이달의 훈화
연중 제7주간 - 사순 제2주간

전수홍 안드레아 신부

전수홍 안드레아 신부는 1991년 광주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2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99년 로마 그레고리오대학교 역사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9년부터 2007년까지 부산가톨릭신학대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부산교구 토현성당 주임사제로 재임 중이다.


연중 제7주간(2월 20-26일)
묵주기도 ‘구원송’에 대한 이해

묵주기도의 ‘구원송’(‘구원을 비는 기도’)은 1917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발현한 성모 마리아가 신자들에게 묵주기도 각 신비 사이에 바치도록 권고한 기도문이다. 그래서 소위 “파티마 기도”(Fatima Prayer)라고 부른다. 그 라틴어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O mi Iesu, dimitte nobis debita nostra, libera nos ab igne inferni, conduc in caelum omnes animas, praesertim illas quae maxime indigent misericordia tua. Amen.”
이에 대한 영문 번역 기도문은 라틴어 기도문을 충실히 번역하고 있다.
“O my Jesus, forgive us our sins, save us from the fires of hell, lead all souls to Heaven, especially those in most need of Your mercy. Amen.”
하지만 지난 2011년 10월12일 한국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는 “번역상의 혼란”을 피하기위해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아멘”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구원을 비는 기도’를 원문에 충실하게 우리말로 번역하면 이렇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모든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시며, (특히 당신의)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돌보소서. 아멘.”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구원송은 공적 기도문은 아니기에 ‘가톨릭 기도서’에는 빠져있으며 신자들이 자유로이 바칠 수 있는데, 아직 주교회의에서 수정문을 발표하지 않았기에 아직은 과거 기도문을 바치는 것이 옳다.


연중 제8주간(2월 27일-3월 5일)
사순절과 재의 수요일 유래와 의미

희생으로 절약한 것을 사랑으로 나눠야 하는 사순절은 슬픔이 아닌 기쁨 간직하는 시기이다.
“사람은 흙에서 왔으므로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 회개와 보속의 시기인 사순절은 머리에 재를 얹는 의식이 거행되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된다. 초대교회에서는 사순시기가 없었고,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파스카 성삼일’ 예식만 있었다. 박해 시기를 거처면서 부활 대축일의 준비를 위해 회개와 보속의 기간이 생겨났다.
사순시기가 40일로 정착된 것은 니케아 공의회(325년)의 결정이며,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한 것은 6세기 말, 그레고리오 1세 교황(590~604 재위) 때부터였다.
그 후 전년도에 받아 보관했던 성지 가지를 태워 재를 얹는 모습은 12세기부터 등장했다. 그리고 현 예식에서는 재의 수요일에 단식과 금육제를 지키고 이마에 재의 십자표를 바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재는 고대로부터 통회, 참회, 덧없음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대 시대의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불과 재가 정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모든 세계의 축제는 재의 수요일 전날까지 거행되며, 소위 축제를 의미하는 ‘카니발’이란 용어도 라틴어 ‘Carne Vale’(육고기야 가라!)에서 유래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선교했던 유럽 선교사들은 사순시기에 육고기 대신 생선으로 만든 어묵, 즉 ‘뗀뿌라’를 먹도록 했는데 ‘뗀뿌라’ 용어도 라틴어의 시간을 뜻하는 ‘Tempus’(뗌뿌스)의 복수 ‘Tempora(뗌뽀라)’ 즉 ‘시간들’이란 뜻으로 사순시기를 의미한다.
그리고 성금요일과 더불어 재의 수요일에 시행되는 단식의 의미는 굶주림의 고행이 아니라 인내와 극기 희생을 통해 다른 이들의 곤경에 관심을 가지고 절약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으로 나누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순 제1주간(3월 6-12일)
과감히 한 다리를 빼라

“하느님이 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믿고 사는 이에게나 믿지 않는 이에게나 손해되는 것은 없다. 그러나 혹시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의 득실의 차이는 얼마나 엄청나겠는가?”
이 내용은 유신론적 철학자 블레어 파스칼(Blaiss Pascal: 1623-1662)의 ‘내기이론’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믿음의 선택에 대한 긍정적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자유를 가진 인간은 보이지 않는 공기나 자기 조상의 존재는 받아들이지만 하느님의 존재를 받아들이기가 참으로 쉽지는 않다. 아마 공기나 조상은 이미 선택되어진 사실이기에 받아들이지만 하느님의 존재는 자신이 선택해야 하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따라서 복음에서도 토마스 사도는 “주님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는 가끔 이중적인 모순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하면서도 한편으로 더 많이 모아서 안락하게 살고 싶고, 또 ‘하느님을 믿고 섬겨야 하는데’하면서도 ‘진짜 있을까’하는 불신의 마음도 함께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우리 인간은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셈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선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잘 들여다보면 그런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자유가 있고 이 자유는 자아완성을 위해서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가장 진실되고 아름다우며 가장 선한 진선미의 극치를 추구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그 진선미의 극치인 절대적 존재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 절대적인 존재가 하느님임을 선택하여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일상의 걱정거리와 두려움을 녹여버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유혹이나 고통에서 이겨낼 수 있는 은총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불신의 편에 서 있는 우리의 한쪽 다리를 과감히 빼내도록 하자.


사순 제2주간(3월 13-19일)
‘십자가의 길’에 대하여

‘십자가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해골 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성화로, 혹 조각으로 표현하여 축성된 십자가와 함께 14처(stations)를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이것은 초기 교회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골고타까지의 거리를 걸으면서 기도드렸던 데서 유래한다. 이 순례지가 지리적 정치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15세기, 16세기 유럽에서는 성지 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각 처의 숫자와 기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기도는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는데 1688년 교황 인노첸시오(Innocentius) 11세는 이 수도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했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이 기도를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를 허락하였다.
1731년 교황 클레멘스(Clemens) 12세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각 처의 숫자도 14처로 고정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신심은 전 세계에 퍼져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기도로 특별히 사순절에 널리 행해지고 있다.
십자가의 길과 관련된 한 예화가 생각난다.
중세시기에 프란치스코회와 같은 개혁수도회로서 도미니코회는 로사리오 기도를 강조했다. 하루는 프란치스코 수사가 도미니코회에 찾아와서 고백성사를 청했는데 보속으로 십자가의 길을 바치되 각 처마다 로사리오 기도 15단씩을 바치라고 해서 엄청 힘들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보속을 준 도미니코 수사가 프란치스코회에 와서 고백성사를 보게 되었는데 마침 과거 수모를 당했던 수사가 성사를 주게 되었다. 당연히 보속으로 로사리오 기도 15단을 바치라고 하면서 성모송 한번 할 때마다 십자가의 길을 하도록 하여 수모를 갚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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