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못해서 교회에 가면 성사를 안 봐도 되나요? ‘교회의 법’일뿐이기에 같은 하느님 믿는 개신교의 예배에 참석하면 고해성사를 안 봐도 된다던데, 정말 그래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by 월평모힐라리오 posted Jan 15,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 6권 이런 질문해도 되나요?” 


 

신앙생활이 정말 헷갈립니다.


 

265. 2014년 전례력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3월 4일 연중 제8주간이 화요일에 끝나고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 시기에 들어간 것은 이해가 되는데요사순과 부활 시기에 이어 시작된 연중 시기즉 6월 9일이 연중 제10주간으로 되어 있습니다연중 9주간은 어디로 사라졌나요?

266.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가 무엇입니까유럽의 교회가 그 영향으로 잘못된 길에 들어섰던 연유도 알고 싶습니다.

267. 어떻게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을까요어떤 방식으로 응답해 주시는 걸까요응답해 주시는 것을 모르고 지나친 건 아닐까요?

268. 개신교 복지관에서는 매일 기도 모임을 갖고 매달 전 직원이 공동예배를 드립니다가톨릭 신자로서 그 모임과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따로 기도합니다제가 직장을 잘못 선택했나요?

269.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혹이 없을 수가 없지 않나요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합니다.

270. 자녀 결혼식 날짜를 받은 이후에는 남의 집 행사에 참석하면 복을 뺏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장례식은 궂은 일이라 더 피해야 한다는데요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날이 복된 날이고좋은 날이라 생각하면서도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서 망설여집니다현명한 선을 그어주세요.

271. 우리 조상들의 부엌 신뒷방 신 등을 모시는 것과 가톨릭에서 직업의 주보성인이나 본당성인을 정하여 공경하는 일이 어떻게 다른가요?

272. 신부님께서 연도(제사)를 망자의 사망일에 맞춰 지내라 하십니다하지만 통상적으로 제사는 사망 하루 전날에 지내지 않습니까?

273. 제 세례명이 '마리아'인데 저희 아들은 '요셉'입니다주위에서 모자의 세례명이 어색하다 합니다고쳐줄까요?

274. 친정 어머니께서 비르지타 15기도를 열심히 바치십니다구원을 약속하신 15인에 사위도 포함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275. 신부님 저는 미사 시간에 주로 눈을 감고 집중을 합니다그런데 성찬례 때도 눈을 감고 하는데 이것이 틀린 건가 싶어서요사실 눈을 뜨고하니 사람들의 움직이는 여러 가지 것들에서 분심이 생기더라구요.

276. 타종교인과 대화를 해보면 종교간의 소통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타 종교인과는 논쟁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277.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예수님의 가르침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구약의 하느님은 악인을 멸하고 그분께 원수되면 모조리 없애는 폭력을 사용하셨는데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라고 요구합니다동일한 하느님인지 헷갈립니다.

278.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못해서 교회에 가면 성사를 안 봐도 되나요? ‘교회의 법일뿐이기에 같은 하느님 믿는 개신교의 예배에 참석하면 고해성사를 안 봐도 된다던데정말 그래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279. 29세 청년입니다늘 지고 양보하고 남을 배려하며 살았습니다타협적이고 주체성 없는 모습이라서 싫습니다이름 탓은 아니겠지만 새로 시작하는 의미에서 바꾸고 싶은데신부님께서 지어주실 수 있나요?

 

278.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못해서 교회에 가면 성사를 안 봐도 되나요? 교회의 법일뿐이기에 같은 하느님 믿는 개신교의 예배에 참석하면 고해성사를 안 봐도 된다던데, 정말 그래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교회법은 인간이 만드는 국법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교회의 교도권이 하느님의 뜻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간 영혼의 구원에 유익하도록 제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임의대로, 편의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드립니다.
가톨릭 교회는 개신교가 같은 하느님을 믿는 갈라져 나간 형제라는 점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그들과의 일치를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개신교의 전례에는 잃어버린 하느님의 뜻이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예배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함께 어우러져 하나되는 신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탄생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주님의 늑방으로부터 나옵니다.
주님 희생의 절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성찬의 전례가 없는 탓에 그 몸과 피로서 새로운 삶으로 초대받는 신비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결코 똑같은 전례가 아닌 것이지요.
가톨릭 교회를 통해서 전승되어 계승되고 있는 귀한 은총을 허술히 여기는 어리석음을 단속하기 바랍니다.
십자가 위에서 스스로 제물이 되시어 봉헌하신 예수님의 완전한 천상 은총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