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권 “이건 알아두세요”
힘내세요
224.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225. 성당 다닌지 수십 년인데, 아직도 하느님께서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226. 하느님은 사랑이신데, 왜 세상에 고통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227. 묵주기도는 단순한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이라서 기도 중에 자꾸 지루해지고 따분해집니다.
228. 자비심 기도를 바칠 때에 비해서 묵주 기도에서는 자꾸 잡념이 생깁니다. 때문에 자비심 기도를 더 많이 바치게 되는데 괜찮습니까?
229. 주일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강론 중에 신자를 내쫒고 나이 많은 어른께 반말을 하는 본당 신부님께서 드리시는 미사는 전혀 기쁘지 않습니다. 신부님의 너무 높은 위치를 보지마시고 조금 머리를 낮춰 우리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 그래도 신부님들, 정말 사랑합니다.
230. 미사전례 중 사람이 쓰러졌는데도 계속 미사만 진행하는 모습에 실망했습니다. 잠시 중단하고 환자를 배려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요?
231. 전교를 하는 중입니다. 입교를 원한다면서도 자꾸만 “개종하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며 망설이기만 하니 속에 열불이 납니다. 어떻게 설득할까요?
232. 뜻도 모르고 읽는 성경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요. 비몽사몽 바치는 염경기도나 집중하지 못하는 미사참여도 효과가 있는지요? 모두, 그분을 우롱하는 일이 아닐지요.
233. 동생이 20년 동안 정신과 치료 중입니다. 병원에서는 퇴원을 종용하지만 약물중독 증세와 정신이 온전치 못할 때도 많아서 불안합니다. 어떻게 하는 게 옳을까요?
234. 자식에게 소홀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훌륭한 사제를 삶의 멘토로 정해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235. 미사 참례시에 주변 교우분의 지나친 화장품과 염색약, 퍼머약 냄새로 너무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어쩌면 저 혼자 감내해야 할 개인의 체질적인 사안인지 모릅니다만, 대중이 모여 참례하는 미사에서는 지나친 냄새를 피우지 않는 것도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236. 사정상 다른 본당 미사에 참석했다가 ‘명찰을 달지 않았다’고 지적을 당했습니다. 명찰을 갖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이제 본당 미사가 아니면 참석하지 못하겠습니다.
236. 사정상 다른 본당 미사에 참석했다가 ‘명찰을 달지 않았다’고 지적을 당했습니다. 명찰을 갖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이제 본당 미사가 아니면 참석하지 못하겠습니다.
명찰을 사용하여 이름과 본명을 익혀서 친근한 공동체를 일구어 가도록 취해진 좋은 의도인데 ‘사고’가 발생했군요(‘삐웅~삐웅~’ 구급차가 달려갑니다 ^^).
‘명찰달기’를 통해서 영성체할 때에 “본명을 부르며 성체를 건네시는 신부님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어요”라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분도 계시고,
명찰을 깜빡하면 신부님께 야단을 맞을 것이 겁나서 성체를 모실 마음마저 흩어지더란 딱한 분도 계시더군요.
눈에 보이는 효과에 치중하여 주님과 하나되는 전례의 핵심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명찰달기의 사목적인 배려가 전례의 본질적 의미를 놓치게 한다면 심히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더욱이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미사에 불참하는 ‘죄’를 범하려는 생각은 어리석음의 극치임을 말씀 드립니다.
가급적 본당 전례에 참석하여 신앙을 공고히 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럼에도 사정이 생겨 타 본당 미사에 참례하더라도 하나이며 보편된 주님의 은총을 똑같이 누릴 수 있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가장 큰 장점이며 축복입니다.
타 본당 신자를 위해서 따로 방문자 명찰을 비치하여 감동을 자아내는 본당도 있는 줄 압니다.
두루 방문한 신자들까지도 세심히 배려하는 ‘열린’ 본당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