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권은정 루이제 작가, 서울대교구 하늘땅물벗 회원

한참 전의 일이다. 본당의 어느 자매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데 그분이 차창 밖을 보다가 갑자기 성호를 그으며 소리쳤다.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밖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고 소리 친 것이었다. 봄을 맞아 피어나는 진달래며 개나리,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나무들의 수선스런 움직임으로 천지가 진동하고 있던 때였다. 나는 그때 그 자매의 모습이 이해가 안 갔다. 봄 산이 아름답다고 버스 안에서 남들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찬미송을 드리는 것이 좀 창피했다. 지금도 썩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때 나는 그다지 신심이 깊지 못한 신자였다.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아름다운 산과 들과 하늘, 이 세상 온갖 것들이 얼마나 주님의 은총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은 또 얼마나 찬미 드려 마땅한 것인지를! 물론 나는 아직 버스 타고 가면서 큰소리로 기도 드릴만큼 용감하지는 못하다.온 세상은 정말로 주님의 찬미로 가득 차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받으소서’는 그래서 진심으로 다가온다. 2015년에 반포된 교황회칙 ‘찬미받으소서’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온 세상 가톨릭 신자들에게 전하시는 말씀이 담긴 책이다. 교황께서 전 세계 신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형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회칙’은 그중에 가장 높은 등급의 말씀이다. ‘찬미받으소서’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환경사목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교황께서는 ‘우리 인류 공동의 집 지구’를 우리가 왜 돌봐야 하는지를 설득하고 계신다. 요즘 우리 중 지구가 정말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뉴스에 어두운 이들도 기후위기, 탄소중립 등등의 말을 한 번도 안 들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후나 환경에 대해 시큰둥한 사람들이라도 매년 여름의 더위가 심상치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세계 각국 곳곳에서 무서운 산불이 일어나 사람들은 목숨과 살 곳을 잃었다. 때아니게 홍수가 일어나 온 동네 전체가 물에 잠기는 일들이 잦아졌다. 평소 그런 위험과는 상관없는 ‘선진국’이었는데도 말이다.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어느 섬나라는 곧 물에 잠기게 되어 나라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뉴스도 나온다. 먼 나라 남의 이야기로 넘겨버리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기후변화는 유난히 더운 여름 한 철의 날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상 기온으로 계절에 맞춰 농사짓는 일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벌들도 사라지고 철새도 오지 않게 되었다. 자연계의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 질서 안에는 우리도 들어가 있다.

우리는 이 땅을 ‘관리하는 이’, 즉 ‘청지기’일 뿐기후변화는 그동안 우리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왔는가에 대한 총체적 결과이다. 인간은 자연을 너무 가혹하게, 함부로 대해왔다. 인간이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인양 살아왔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땅을 ‘지배’(창세 1,28)하게 하였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워 이 땅의 주인은 우리, 인간이라고 주장해왔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소유를 당연시해왔다. 물, 공기, 동물과 식물, 돌멩이까지 우겨 잡고 놓지 않는다. 마침내 자기보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지배’도 별스럽지 않게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하지만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이라는 정원을 우리에게 맡기셨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에서 ‘일구고 돌보아야 한다’(창세 2,15)고 말씀하시는 것을 주목해야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이 세상이라는 소중한 밭을 경작하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것들을 돌보고 보호하며 감독하는 일을 인간에게 맡기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관리하는 이’, 즉 ‘청지기’일 뿐이다. 더 이상의 권리는 없다. 이제라도 우리는 그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한다우리 믿는 이들은 고백성사를 통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하고 회심하는 이들이다.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연과 우리 삶의 모든 환경에 대한 회개를 요구한다. 즉 ‘생태적 회심’을 하자고 권고 하신다. 착취당하고 핍박받는 모든 피조물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하신다.교회 안에서는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시작했다. 우리가 왜, 어떻게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보살펴야 하는지를 알고 실천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우리 레지오 모든 단원들도 이 여정에 함께 하기를 권하며 올 한 해 동안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주님 것이라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시편24.1)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께 속한 이 세상을 우리 미약한 인간들이 얼마나 함부로 망쳐놓았는지를 한번 찬찬히 둘러보자. 그리고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주님이 맡기신 이 땅을 관리하는 청지기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로 다함께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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