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 마태오복음 2,1-12
오늘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경계를 넘어 세상 모두에게 왕으로 알려짐을 경축합니다.
복음은 세 사람의 동방박사가 나타나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먼길을 별만 보고 왔습니다. 오랜 여정 끝에 드디어 별이 머무는 곳에 가까이 왔습니다.
왕이시니 당연히 궁궐에 태어나셨다고 생각합니다. 별을 볼 수 있는 밤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궁궐로 찾아가죠.
박사들은 궁궐에서 좋은 정보를 얻고 쉽게 아기가 있는 곳을 찾아냅니다. 그런데 정작 정보를 제공한 율법학자들, 소위 성경전문가들은 <별과 예언의 말씀>이라는 이토록 뚜렷한 표징 앞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은 그들의 알량한 지식을 뽐낼 수 있는 도구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행동하지 않고 다만 <아는 것>으로만 그치는 머리만 큰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아~ 우리는, 나는 어떻습니까?
학자들이 왕을 찾아 나서지 않았던 큰 이유는 그들 마음 속에 <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별을 간직한 사람만이 자기 밖의 별을 볼 줄 압니다. 아니,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별에 맞갖는 별을 찾아 나서게 마련입니다.
돈, 출세, 권력, 명예라는 별아닌 별을 품고 사는 이는 평생 그것이 별인양 찾아 헤매겠지요.
여기서 많은 이들의 가슴에 못밖고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인물을 생각해 봅니다.
헤로데!
이미 얻어낸 출세, 권력을 결코 놓치고 싶이 않아 불안에 떠는 인물, 그래서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아기들을 무참히 죽인 인물입니다.
헤로데!
이미 얻어낸 출세, 권력을 결코 놓치고 싶이 않아 불안에 떠는 인물, 그래서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아기들을 무참히 죽인 인물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자신의 안위, 출세를 위해 다른 이를 짓밟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인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도 나만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기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이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주는 인물이 세상에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별들, 표징들 앞에서, 힘들더라도 따라나서는 이들, 현재의 위치에서 자만하며 안주하는 이들, 현재의 지위를 고수하기 위해 타인의 안위를 위협하는 이들, 이 세부류 중 내가 속하는 부류는?
가슴에 별을 품고 별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우리, 다른 이에게 또 하나의 별이 되어 인도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쯤해서 자문해 보아야겠습니다.
<내 가슴 속 별은 어떤 별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