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이야기
2021.11.29 12:04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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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와 향이 마음을 기쁘게 하듯, 친구의 다정함은 기운을 돋우어 준다

(잠언 27 9)

친구1) 중학교를 같이 나와고 재수시절을 함께 보내고, 서울의대를 나와 현재 강릉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분명 같이 재수를 할 때 나보다 더 놀았고 나한테는 담배와 술을 권한 그 놈은 서울대에 갔고, 저는 떨어져서 후기대학에 간신히 입학을 했었지요. 입학직 후인 91 3월말쯤에 저희 학과로 그 친구가 국립 서울대학교라고 선명히 인쇄된 봉투에 책을 한권 저에게 보냈습니다. 그 당시 꽤 베스트셀러였던 유시민 작가의 ‘거꾸로 읽은 세계사’ 였어요. 자기가 읽어보니 좋아서 저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는 짤막한 멘트와 함께 말입니다. 저희 둘은 그 해 첫 여름방학에 지리산 천왕봉을 갑니다. 그 동안 지리산근처까지 간적은 무수히 많으나 정작 천왕봉 정상을 밟아본 경험은 그때가 저는 유일합니다.

그리고 저는 군대에 갑니다. 6주간의 사단 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저도 누구나 그러했듯이 어리버리함 그 자체 였어요. 3주차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단장님이 직접 정신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사단장님 오시기 2~3일 전부터 아주 난리도 아니였습니다. 교육장근처를 쓸고 닦는건 기본이고, 교육중 졸거나 딴짓하는 놈은 죽인다는 조교와 중대장의 협박, 그리고 우리 중 가방끈이 길거나 굵은 친구들을 선발하여, 사단장님의 교육도중 예상되는 질문리스트, 사단장님의 취향에 맞는 질문리스트와 그 모범답안을 외우게 하고, 예행연습도 했답니다. 물론 어리버리한 저는 그 인원에 선발될리가 없었지요. 사단장의 교육이 시작되고, 군인이 아니였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모자에 박힌 별모양 두개를 응시하고 있는데, 사단장이 갑자기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합니다. 월남전 참전군인이여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할려는 찰라, “제군들은 월남전의 원인 뭔줄 아나?”하는 질문을 얼떨결에 던집니다. 아뿔싸!! 이 질문은 그 예상 문제에 없었나봅니다. 순간 조용하고 싸늘한 공포의 침묵이 교육장 전체를 덮치면서, 당황한 특별차출인원들과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지는 중대장과 조교들, 공기가 차가워집니다. 그때 제가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통킹만사건 입니다”라고 답을 합니다. 순간 사단장님 얼굴이 활짝 펴지면서, 본인이 더 무안했다고 하시면서 그 시베리아같았던 분위기가 다시 벗꽃 만발한 봄날로 순식간에 바뀌어졌지요. 다 친구가 보내준 ‘거꾸로 읽은 세계사’를 본 덕분이였어요. 저는 그 일을 계기로 군생활에 자신감이 생겨서 불과 3주 후 그 사단장님 표장을 받아서 67일 휴가를 갑니다.

얼마전 그 거꾸로 읽은 세계사가 30년만에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친구에게 택배로 보냈습니다. 30년만에 다시 내가 갚는다는 멘트와 함께 말입니다.

친구2)  2년전 먼저 하늘나라로 간 어릴적부터 가장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10년전쯤 제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처했을때, 같이 안타까워하며 이 친구는 다른 친구들에게 저도 모르게  모금을 하여 꽤 큰 거금을 저에게 전달해줘 제가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도 힘든 시기이기에 차마 저는 그 친구에게 그 돈의 출처와 내역을 물어보지도 못했고, 그냥 다른 친구들이 다 십시일반으로 저를 도운것이라고 짐작만 했습니다. 이 친구의 사망의 원인은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였습니다. 아마 생을 마감하기 직전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 결과적으로 저였고, 힘들어 보이는 친구에게 무슨 위로의 말을 할지 난감해서 어린시절 우리가 좋았던 기억들을 많이 이야기하며, 처음으로 그 돈의 출처를 물었더랬어요. 친구는 “아니다, 우리가 그래도 나누어 왔던 정에 비하면 나는 무척 작은 금액이라 생각하고 그 정도밖에 도울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란 내 인생의 거울이며, 객관적인 내 인생의 증인이다”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 친구의 시신을 거두고, 장례를 다 준비하면서 저는 슬퍼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비록 자살이지만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고, 3개월정도를 산업재해보험관련 소송을 준비했습니다. 1년 후 변호사에게서 산재에 승소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변호사로부터 판결에 내가 준비한 자료가 가장 결정적이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간 그 친구에게 빚을 조금이라도 갚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위령성월에 그 친구를 위한 위령미사 예물을 올렸습니다.

친구3)  지금의 제 아내 파비올라와 연을 맺게 해준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 이 친구의 당시 여자친구가 늘 자기 친구중 괜찮은 애가 있는데, 영정씨에게 소개하면 좋겠다고라고 조른 모양입니다. 그때마다 제 친구는 “내 친구에게 함부로 여자를 소개해주면 안된다. 내가 직접 보고 겪어보고나서 내가 결정할게”라고 말입니다. 저에게 파비올라와의 소개팅을 주선할 때 이 친구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몇번 봤다. 친구야? 소개팅 해봐라. 괜찮더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저와 파비올라가 처음 인연을 맺은지 벌써 20년이 넘게 지났네요. 몇일전 이 친구와 같이 먼저 죽은 친구2의 기일을 맞아서 영락공원에 갔더랬습니다. 오랜만에 옛친구를 같이 만나니 참 느낌이 좋았습니다. 돌아오면서 운전하는 저에게 그 친구가 잠시만 들릴때가 있다며, 자기집 근처 유기농전문 마트앞에 세우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냥 집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나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는 한우소고기를 사오더라구요. 그걸 저한테 주면서 아직 저희 부모님이 건강하신게 참 다행이라고, 저희 아버지 어머니께서 인사도 제대로 못드리는데 별 것 아니지만 드셨으면 해서 샀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의 부모님은 벌써 몇 년전에 다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친구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어요. 어머니,아버지께 그 소고기를 드리면서 사연을 이야기하니 어머니가 감동하셔서 눈물을 글썽 하셨습니다.

친구4) 저도 그 소고기 때문에 몇일간 마음이 너무 흐뭇하고 기운이 돋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도 이런 아빠친구들을 자랑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저는 과연 친구들에게 그렇게 받은만큼 배려를하고 살아왔나? 하고 물으니 자신이 없더군요. 해서 몇일전 퇴근길에 얼마전부터 병석에 누워계신다는 다른 친구의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어물전에서 조기 몇마리를 사서 모라중학교 건너편에 있는 다른 친구의 부모님댁에 잠시 들렀습니다.

어릴적 늘상 왔다갔다했던 친구네집을 30년만에 다시 가니 참 어색했고, 어머니께서 저를 알아보시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몸져 누워계시는 아버지 앞에 앉아 저희 부모님 안부를 주고 받으며, 꼭 쾌차하시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를 간병하시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대문까지 배웅하시는데, 어머니 고생많으십니다. 어머니도 건강 꼭 챙기세요라고 하니, 어머니가 저를 한찬 안아주셨어요. 기운이 막 나더군요.

PS. 우리네 생활이 행복해지는데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이런 행복감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하느님의 빛나는 얼굴을 떳떳하게 볼 날이 저도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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