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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성지순례]ME가족 성지 순례(22. 제물진두 순교 성지)

by 율하알폰소 posted Oct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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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22. 제물진두 순교 성지)

 

제물진두는 김대건 신부가 부제품을 받고 일시 귀국하였다가 1845년 사제품을 받기 위해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났던 역사적인 곳이자 1888년 바오로 수녀회 수녀 4분이 조선에 첫 발을 내디딘 곳이다.

 

인천은 역사적으로 한양을 향한 관문의 역할을 해온 곳이다. 그래서 조선초기부터 이 문을 지키는 수군기지 제물량(濟物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 형성된 제물포는 외국과 우리나라를 잇는이었다.

순교자들에게 이 제물량에 자리한 나루(津頭/진두), 제물진두는 하느님을 향해 있었던 순교자들의 문이기도 했다.

조선 정부는 바닷길을 통해로 한양으로 이르는 관문인 이곳 인천지역에서 서양 세력의 침공이 있었던 만큼, 서양 세력을 배척하는 의미로 인천지역에서 서학을 신봉하는천주교신자들을 처형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나루터, 곧 제물진두가 공개처형지로 적합했다.

 

제물진두 순교성지에서는 18684분의 순교자가 도끼로 참수당하고 1871년 에는 5분이 교수형으로 순교한 곳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순교지 임에도 뒤늦은 2011년에야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었고 인천의 그 유명한 차이나타운의 한 모퉁이를 겨우 매입하여 경당을 봉헌하였고 현재 <인천교구 해안성당>에서 관리하고 있다.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이 지역이 청의 치외법권(治外法權, extraterritoriality)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겨났다고 한다.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재는 거의가 중국 음식점이다.

조선 말기에 중국인이 많이 이주해 온 지역이다 보니, 온통 붉은색과 중국풍의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있는 이색적인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지의 순례자에게는 전통의 중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주는 특색 있는 순례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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