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수호자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2021. 10.10 사도 1,12-14; 갈라 4,4-7; 루카 1,26-38)
땅에서 올리는 인간의 기도는 완덕을 향한 연습입니다.
더욱이 묵주기도는
우리를 영적으로 성숙시키는 기도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묵주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으로
예수의 인간되심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는 기도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끝없는 찬미다”라고 했습니다.
성모님은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신 사실이 묵주기도를 통해서 드러나지만 묵주기도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예수님께 바쳐드리는 ‘합송의 기도’입니다.
이는 성모송의 전반부 기도문이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증명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이여 기뻐하소서”라는 구절은 천사 가브리엘이 하느님께 은총을 받은 소녀에게 들려주었던 말이고, 또 세례자 요한 어머니 엘리사벳이 성령에 감동되어서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에게 들려주었던 감동의 언어로 짜여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성모송 전반은 하늘의 메시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은총을 받은 피조물의 응답을 들으신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기쁨의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 교회에서 덧붙인 말은 하느님께 순명해 드림으로써 하느님께 기쁨을 드린 마리아에게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죄인을 위해서 빌어주소서”라는 부탁을 드리는 대목을 첨가시킨 것입니다. 그 뜻을 헤아린다면 정말 이것이 성모님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 죄인을 위해서 우리와 함께 기도해 주시는 성모님을 부르는 기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그 삶을 놀라워하고 그 희생에 감사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찬미하는 마음이 묵주기도의 바탕입니다.
김익진은 “묵주기도는 내게 음악과도 같았다. 동정 마리아의 반주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연주될 수 없었다. 묵주기도야말로 그리스도의 일생을 재현하는 뮤지컬이었다. 성모님의 반주가 있어 그리스도의 멜로디가 더욱 아름다웠다. 각 신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생각하면, 묵주기도는 인류 역사의 협화음과 불협화음이 서로 엇갈리는 웅대한 교향곡이었다. 묵주만 손에 쥐고 있어도 힘이 났다”라고 했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묵주기도의 은총은 정말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인 것을 깨닫고 신자라면 누구나 그 은혜를 충분히 누리시길 바랍니다. 아멘.
묵주기도는 언제나 다시, 이어 바쳐도 무방합니다. 기도는 방법과 철칙에 묶이기보다 진심으로 바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살아계시는 주님, 이름을 부를 적마다 응답하시는 그분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정성된 기도로서 종일, 그분을 기억하여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은 충분히 주님께 기쁨의 선물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에서 횟수나 시간이 아닌 마음을 보십니다. 기도에 그분의 뜻을 기리고 감사하는 고백이 담길 것을 고대하십니다. 하여 기도하는 이에게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콜로 2,2) 하십니다.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콜로 3,1)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런데 기도하려고 할수록 분심이 자주 드는 것도
기도에 있어서 감안해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사탄은 너무나 부지런해서
우리가 기도하는 자리에까지 쫒아 와서 잡생각을 주입시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꼬드기고
‘위선’이라고 비웃으며 기도를 방해합니다.
마음이 산란할 때 더욱 그분께 더욱 의탁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인간으로써는 불가능한 용서에 도전하는 일
사람으로써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주님의 도우심에 의한 결과이며,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가능한 축복이니 결코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심금을 울리는 기도의 힘이
어리석음을 잘라내는 지혜를 줄 것입니다.
질기게 기도하는 모습이
후회할 일을 반복하지 않는 지혜를 살게 할 것입니다.
또한 혼자의 기도보다 함께 모여할 때 훨씬 힘이 있습니다.
모여 기도하는 마음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분께서 꼭 거두어들이십니다.
때문에 함께 기도하는 것은
정말 강하고 귀한 축복의 통로로 들어서는 일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