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율법 규정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바리사이들과 예수님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소개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말씀은 혼인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과 예수님 사이에 오고 간 대화의 맥락을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의 말씀을 남녀의 혼인이라는 관점에만 제한하여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율법 규정을 글자 그대로 지키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 정신을 찾고 이를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예수님,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더 중요한 것을 보라고 가르치는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글로, 문자로 기록된 규정과 원칙은 사람의 눈에 명확히 드러나 보입니다. 여러모로 편리하고 깔끔합니다. 지키는 사람과 어기는 사람, 그래서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확연하게 구분 지어 줍니다. 잘 지킨 이에게는 그 대가로 심적 만족감이나 안정감을 주고, 잘 지키지 못한 이, 어긴 이에게는 반대로 실망감과 불안함을 가져다줍니다.
반면 규정과 원칙의 근본 정신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모로 불편하고 성가십니다. 누가 그것을 지니고 있는지 아닌지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실상 잘 사는 사람을 못 사는 사람으로 보이게도 하고, 못 사는 사람을 잘 사는 사람처럼 보이게도 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기에, 부단히 애를 써야 합니다. 찾기도 쉽지 않지만 설사 찾았다 하여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 진위를 둘러싸고 의견의 분열을 초래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 근본 정신입니다.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속한 다양한 공동체의 규정과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 근본 정신을 찾고 헤아리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남다름은 바로 이점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의 눈에는 드러나는 남다름이 있어야 합니다.
혼인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접하며, 나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많은 규정과 원칙보다 그 근본 정신, 참 의미를 찾고 살아가는 데까지 나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