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일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꾸지람>
(2021. 9. 5 이사 50,5-9; 야고 2,14-18; 마르 8,27-35)
그날 주님께서는
당신의 질문에 똑 부러진 ‘정답’을 말씀드린 베드로에게 칭찬은 고사하고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함구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리고 기껏 예수님을 위해서 말씀드린
베드로의 ‘충언’을 까칠하게 나무라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는 황당한 꾸중에
베드로는 어안이 벙벙했을 것만 같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항의는커녕
변명할 염조차 내지 못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보이는 듯 딱합니다.
베드로의 심정은 안중에도 없이
일사천리로 ‘십자가 진리’를 선포하시는 주님이 야속합니다.
그날 베드로는 못된 짓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그저 당신을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드렸던 것이니,
정상참작을 해 줘야 마땅하지 않나? 싶어, 속상합니다.
더더욱 오늘 사건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는 “길”에서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백주대로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꼭 이렇게 무안을 주고 우세스럽게 만드신 의중이 의심스럽습니다.
평소에는 곧잘 제자들만 불러 타일러 일깨우시던
주님의 모습이 아니라 더 의아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속속들이 아십니다.
“앉거나 서거나” 모두 알아차리십니다.
“말이 제 혀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모두 알고 계십니다(시편 139편 참조).
그러니 그날 베드로의 진심을 모르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리 생각하면 민망한 일을 당하고도
군소리 없이 그분을 따랐던
베드로의 주님 사랑이 참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이야말로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히브 12,5)는
말씀을 살아낸 모습이라 믿어집니다.
그분의 꾸짖음은 우리의 자존감을 상하게 하려는 모욕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생각’과 그릇된 ‘행위’를 향한 질타입니다.
틀린 ‘시선’과 굳은 ‘편견’을 나무라고 질책하시는 겁니다.
모자란 믿음의 ‘분량’과
자라지 못하는 믿음의 ‘크기’와
좁은 소견과
고약한 마음과
실천하지 않는 행위들을 고치시려 하심입니다.
때문에 우리 안의 ‘악’,
우리 속에 숨은 ‘더러움’,
우리들이 숨겨놓은 ‘오만’에게 큰소리로 호통을 치십니다.
그럼에도 한 순간, 마음에 품었던 생각 탓에
베드로가 사탄의 영역에 속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십자가의 고통을 거부하려는
인간적인 순간적인 생각이
곧바로 ‘사탄의 하수인’으로 몰락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베드로는 그날 주님과 함께 동행했지만
그분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뜻과 따로 놀았습니다.
때문에 자기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결국 주님께 내 생각을 강요하는,
그분의 뜻을 가로 막는 ‘사탄의 짓’에 동조하였습니다.
‘생각만으로’ 사탄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성경은 “육 안에 있는 자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로마 8,8)라고 밝힙니다.
십자가를 거부하는 마음,
십자가를 피하려는 기도,
십자가 없는 삶은
“육 안에 있는” 행위들이기에 모두 사탄의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희생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주님과 ‘다른 생각’이 들 때, “사탄아 물러가라”고 소리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기 바랍니다.
십자가 없는 사랑을 추구하려 할 때,
“사탄”이라고 지적하시는 맹렬한 꾸짖음에 귀가 밝아지기 바랍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믿고 그분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매양 그분의 뜻에 맞갖은 삶을 선택하는 일에 머뭇대며
‘내 뜻’을 주장하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벗어난 생각들을 얼른 털어 마음을 단속할 것을 명하십니다.
하느님의 것이 아닌 생각은 모조리 사탄의 것임을 거듭 일러 주십니다.
나쁘고 어리석은 생각이
마음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조처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어서 서둘러,
그분께서 내 안에 있는 악들을 엄청 혼내어 쫒아내도록,
맹렬히 꾸짖어 쫒아내실 수 있도록,
마음 문을 활짝 열어드리면 좋겠습니다.
하여 그분의 것으로 영혼이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닌 아리따운 생각만으로
충분히,
그분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진리의 귀띔에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 “
행복하여라, 내 길을 따르는 이들 (…)
행복하여라, 내 말을 듣는 사람!”(잠언 8,3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