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일 <하느님의 꿈, 세상의 꿈>
(2021. 9. 5 이사 35,4-7; 야고 2,1-5; 마르 7,31-37)
성경은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미카 6,8)이
그분께서 원하고 또 원하시는 소원임을 수 없이 밝힙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도 선을 좋아합니다.
선한 행동을 칭찬하고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이를테면 세상도 공정을 꿈꾸고
신의가 바탕이 된 사회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세상과
인간이 꿈꾸는 세상이 똑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자기 코가 석자라는 현실 앞에서 휘둘립니다.
눈앞의 이익에 발목이 잡힙니다.
공정과 신의를 저버리기 일쑤입니다.
때문에 더욱 하느님께서는
당신만큼 거룩해질 것을 소원하는 그리스도인들만은
세상과 다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분 닮은 사랑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우리네 삶이
그들과 판이하기를 고대하십니다.
하여 당신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존재일 뿐 아니라
세상의 꿈을 이루어줘야 하는 막중한 사명인임을 숙지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이렇게 근사하고 멋지다니, 으쓱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가려 생각하지 않을 때에
생각만으로도 삶이 얼마나 불온해질 수 있는지를 누누이 일깨우셨습니다.
그리고 악한 생각들은
모두 우리를 조정하려는 사탄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주셨습니다.
악한 생각에 오래 붙잡혀 지내는 일이야말로
자신을 사탄의 하수인으로 내어준 결과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잠깐 스치는 자잘한 생각과
마음가짐 상태에도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여 분별해야 합니다.
잠시 나쁜 생각이 스쳤을 뿐임에도 회개하고,
그른 생각에 잠시 머물렀던 마음을
얼른 씻어내 영혼을 추슬러야 합니다.
결국 믿음의 삶이란
쉼없이 죄의 얼을 부수어 버리는 연속적 작업이며
입술에 돋은 가시를 뽑아내는 정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게 됩니다.
이야말로 속에 품은 선한 생각만으로 충분히,
하느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틀림없는 증거라 믿어지는 까닭입니다.
복음은
주님께서 북돋워 힘을 주셨던 사람들이
거의 눈먼 이와 귀먹은 이
그리고 다리 저는 이와 말 못하는 이들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는 다독임으로
그분께 위로를 받았던 복된 이들은
바로 세상의 탐욕에 눈 밝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며
세상의 소리에 귀 어두운 사람들이었으며
잽싸게 세상을 쫓아가는 일에 빠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니
지금 우리의 자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도 틀림없이 그분께서는
세상의 편견에 불평조차 품지 못하는 가엾은 이를 보살피시며
맞설 힘도
대항할 기력조차 없는 약자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저기 서 있으시오”라는 멸시를 받고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라고 냉대 받는
천박한 사람들 곁에 계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빈말로만,
진심이 서리지 않는 위로 따위로는
우리의 모자란 행실을 감출 수가 없는 것이라 싶습니다.
지금도 도움을 기다리는 이들 곁에는 주님께서 딱 붙어 계시니,
들통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얘깁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생명이 아닌 것에 골몰하고
거짓에 솔깃한 우리의 입과 귀에게 “에파타”라고 외치십니다.
편협한 생각이 넓어지는 은혜를 쏟고 계십니다.
열린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이에게
‘말씀대로’ 이루어질 능력의 언어를 선물하십니다.
“허약하여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우리의 입을 열어
우리와 “함께 아버지의 놀라우신 일들을 찬양하게” 하시는
그분의 간청을 들려 주십니다.
그분의 뜻에 열정을 갖고 매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열린 입과 풀린 혀로 그분 사랑에 응답하고 계십니까?
그분의 말씀대로 변화되어 하느님을 찬미하는 삶을 살아가십니까?
우리가 택함 받은 이유는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모든 일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선한 것을 좋아하는 세상,
착한 일에 감동하는 세상에게
당신 자녀들이 “훌륭하구나”라는
세상의 고백을 듣기를 소원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그 날 “귀 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셨을 때,
사람들이 감탄하며 쏟아낸 말을
오늘 우리 모두가 듣게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