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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영성2  2021년 09월호

라합, 죄인들의 피난처

전삼용 요셉 신부 수원교구 영성관 관장

성모 마리아 호칭 중에 ‘죄인들의 피난처’가 있습니다. 피난처란 위험한 순간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곳입니다. 모세의 법 중에는 ‘도피 성읍’이 있습니다. “몇몇 성읍을 선정하여 도피 성읍으로 삼아, 실수로 사람을 쳐 죽인 살인자가 그곳으로 피신할 수 있게”(민수 35,11)하는 제도입니다. 일단 그곳에 들어가면 비록 살인을 저질렀더라도 공동체 앞에서 재판을 받기 전까지 안전할 수 있습니다.사실 ‘죄인들의 피난처’ 혹은 ‘도피 성읍’이라는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교회’입니다. 교회가 죄인들의 피난처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죄인이라 느끼지 못하면 피신처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라고 하시는 것처럼,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교회 안에 들 수 없습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를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표”(‘가톨릭교회교리서’, 1219항)로 보았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도피한 모든 동물과 노아를 포함한 여덟 명은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방주가 곧 교회를 상징한다고 하여도 그 방주를 지은 인물이 존재합니다. 노아입니다. 그 안에 탄 사람들과 동물들은 노아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덕분으로 만들어진 그 방주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죄인들의 피난처인 교회 또한 대표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노아와 같은 인물이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당연히 교회의 설립자는 그리스도이지만 그 교회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입니다.성모 마리아는 주님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이 당신 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덕분으로 성모 마리아를 통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심판자로 오실 때 성모 마리아 주위에 모인 이들은 피난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공식적인 시작으로 여겨지는 성령강림 때도 열두 사도들과 함께 성모 마리아께서 그 가운데 계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도 1,14 참조). 성모 마리아 보호 아래 있으면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라합은 두 첩자를 숨겨줌으로써 예리고의 멸망때 자신과 가족을 지켜구약 성경에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죄인들의 피난처’가 된 한 여인이 나옵니다. 바로 ‘라합’입니다(여호 2장, 6장 참조). 라합이 살던 예리고 성은 곧 이스라엘 군대에게 멸망할 것이기에 죄인들의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 세상도 모두 죄를 지닌 인간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예리고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운명도 예리고 성처럼 언젠가는 황폐하게 무너질 것입니다.라합은 예리고에서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으로 자신을 여겼던 여인입니다. 라합은 창녀로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고 그래서 구원을 찾는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라합은 여호수아가 파견한 두 명의 첩자를 숨겨줍니다. ‘여호수아’는 이름 자체가 신약의 ‘예수’와 같이 ‘구원자’란 뜻입니다. 라합은 두 첩자를 숨겨주었기 때문에 예리고의 멸망 때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신약에서도 하느님께서 구원자를 보내실 때 자신을 비천한 종이라 여기며 그분을 맞이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십니다. 성모 마리아의 “아멘!”(Fiat)이 있기 전까지는 구세주를 받아들일 집이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고 불순종했기에 이 세상은 주님께 문을 닫아걸고 만 것입니다. ‘아멘’은 ‘믿다’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062항 참조). 믿는 것이 받아들임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으셨고 순종하셔서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닫힌 문을 여셨습니다. 그렇게 구원이 세상이라는 곳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이 들어온 곳은 또한 누군가를 함께 구원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십니다.성 예로니모는 라합의 집을 ‘노아의 방주’와 비교했습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를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표”(‘가톨릭교회교리서’, 1219항)로 보았습니다. 노아의 방주에 도피한 모든 동물과 인간 여덟 명은 세례라는 홍수의 심판을 통해서 살아남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상징합니다. 만약 노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아멘!”하지 못하여 방주를 만들 수 없었다면 누구도 그 홍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성 암브로시오는 라합을 “순결한 창녀로서의 신비로운 교회의 표상”이라 보았습니다. ‘순결한 창녀’(casta meretrix)란 교부들이 교회를 부르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창녀는 죄인을 뜻하는데 그 죄인도 구원자를 받아들이면 순결하게 됩니다. 구원자가 당신 피로써 죄인들을 순결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먼저 죄인임을 겸손하게 고백할 수 없다면 그리스도의 피로 순결해질 수는 없습니다. 성모님도 겸손하셨기에 구원자를 당신 태중에 모실 수 있으셨습니다.

심판 때 죄인들의 가장 안전한 피신 장소는 성모 마리아의 망토 아래뿐오리게네스는 라합이 창문에 붉은 줄을 달아 가족들을 구한 것처럼, 교회 또한 그리스도의 피로 순결하여져서 구원이 보장된 이들의 모임이라고 말합니다. 성 클레멘스 교황과 순교자 마르티노는 라합이 두 정탐군을 피신시키기 위해 창문으로 내린 줄과 그리스도의 피를 연결합니다.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묻은 집은 구원받았듯이 그리스도의 피가 묻은 교회도 구원받습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라합이 여호수아의 정탐꾼들을 받아들인 것이 마치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두 정탐꾼은 소돔 땅에 롯을 구하러 내려간 두 천사와 비견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두 천사는 ‘성자와 성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두 천사를 받아들이고 보호한 롯 덕분으로 그의 가족은 유황불의 멸망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라합에 대한 교부들의 해석은 [『The ‘Geometrics’ of the Rahab Story: A Multi-Dimensional Analysis of Joshua 2』(라합 이야기의 ‘기하학’: 여호수아서 다각적 분석 2), Andrej Toczyski, Bloomsbury, 2018, 85-87]에서 인용함.교회 안에 성모 마리아가 계신다는 것은 마치 소돔 땅에 롯이 있고 예리고에 라합이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의 망토 안에 머물면 멸망이 없습니다. 그분은 이미 당신이 피를 흘리며 성령으로 잉태되신 성자를 받아들이고 지켜내셨기 때문입니다.롯은 두 천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딸을 희생시키려 했습니다. 라합도 두 정탐꾼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성모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덕분으로 예리한 칼에 영혼이 찔리듯 보이지 않는 피 흘림을 당하셨습니다. 교회도 자신이 지닌 진리와 은총을 보존하려 순교의 삶을 살아갑니다.보석함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들어있어도 불이 났을 때 보석함을 들고 나오면 그 안의 것들도 불에서 구원됩니다. 구원받으려면 당신 스스로 죄인으로 자처하시고 우리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성모 마리아께 달려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망토에 모인 이들이 바로 구원이 보증된 죄인들의 피난처인 교회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라합처럼 하느님의 파견자를 받아들이셔서 당신 거처를 거룩하게 하시고 안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심판 때 죄인들의 가장 안전한 피신 장소는 심판자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망토 아래뿐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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