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판단을 하며 삽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같은 대상을 두고도 엇갈릴 때가 많습니다. 그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다르고, 또 그 판단하는 사람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은 나자렛 사람으로 등장하십니다. 그리고 그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두고 두 사람의 엇갈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필립보에게 나자렛은 성경이 알려준 메시아가 나온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에게 나자렛은 결코 큰 인물이 나올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필립보는 예수님을 알았고, 나타나엘은 주님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둘의 이야기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나타나엘의 말이 맞는 지식이었습니다. 나타나엘은 이스라엘의 스승이었고, 율법과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 나자렛은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생각할 수 없는 장소였고 어디에도 의미 있는 곳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를 보신 예수님이 먼저 그를 두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가 거짓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뵙고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미 자신을 알고 계시는 분이고 기다리신 분이시라는 것이 그가 주님을 만나고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미리 알고 있었던 것과 다른 분을 그는 보게 되었고, 그분의 말씀 속에서 그가 부정했던 필립보의 이야기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분은 나자렛 사람이 맞고 또 메시아가 분명하다는 것이 동시에 인정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이 놀라운 고백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복음의 내용만으로 짐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의 스승이었던 이의 지식을 무너뜨렸던 예수님은 수천 년 기다렸던 상상 속 메시아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자렛 사람이었으나 그는 그분에게서 좋은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왜 참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는지도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참된 것을 알아보고 인정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지녔음은 분명합니다. 그런 눈을 가진 위선을 벗어난 눈과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