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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의 외적 목표(제12장)

3. 모든 이를 하나로 만드는 일레지오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마태 6,33) 찾는 일, 즉 영혼들을 위하여 직접적으로 하는 일에 전적으로 투신한다. 그러나 레지오는 “이에 더하여” 주어진 그 밖의 것들, 예를 들어, 자신이 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레지오는 국가적으로는 자산이 되며,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정신적인 혜택을 가져다준다.사회라는 기계가 성공적으로 작동되려면, 일반 기계들이 그렇듯이, 모든 구성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며 협동해야 한다. 따라서 기계의 각 부분처럼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시민들과의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자신이 맡은 일을 정확히 해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불필요한 힘의 낭비가 생겨 균형이 깨어지고 기계의 모든 톱니바퀴들이 서로 어긋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장의 원인이나 정도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므로 수리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게 된다. 더욱이 이렇게 얽힌 문제들을 시정하려다 보면, 순수하게 봉사하려는 마음이나 자발적인 협동 정신에 상처를 주게 되어 점점 더 잘못 되어 가는 일도 생긴다.공동체는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령 구성원의 절반이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계속 기능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공동체는 엄청난 빈곤과 좌절감, 그리고 불행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한 힘의 원천이어야 할 구성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므로 그러한 공동체를 제대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돈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게다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많은 문제거리나 혼란 또는 위기만 가득하게 된다.(중략)국가란 개인의 삶을 합해 놓은 집합체일 따름이다. 따라서 각 개인의 삶이 그렇게 잘못되어 있다면, 그런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라가 어찌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나라 자체가 위기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그런 나라가 혼돈 이외에 이 세상에 내놓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그런데 이러한 공동체 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면서, 자기희생과 상호사랑과 이상(理想)에 대한 생각으로 개개인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해보라!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극도로 심한 염증은 치유되며 삶은 그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난다고 생각해보라. 그 나라는 고결한 규범 위에 삶을 건설하고, 국민 전체가 자기가 믿는 바를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마땅히 문제를 해결해 나가 전 세계에 본보기가 된다. 그러한 나라는 틀림없이 세상을 비추는 찬란한 빛이 될 것이며, 세상은 그 나라를 본받으려고 몰려올 것이다.레지오가 평신도에게 신앙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하고, 자신의 영향 아래 들어오는 평신도들에게 뜨거운 이상을 전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레지오는 그러한 평신도들로 하여금 세의 분열 차별과 상호 반목을 잊고 오직 인류를 위하여 일하고 사랑하려는 열망으로 활기를 띠게 한다. 레지오가 전하는 이상은 신앙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 이상은 모든 일을 봉사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게 하고, 위대한 희생정신을 이끌어 내며, 영웅적인 경지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리고 그 이상은 어느 순간 갑자기 증발해 없어지지 않는다.왜 그럴까? 레지오는 단원들의 활동에 확실한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모든 힘은 반드시 그 원천이 있다. 그리고 레지오는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강력한 동기를 지니고 있다. 이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일찍이 나자렛 마을의 주민이셨다는 사실로부터 유래한다. 이 두 분은 깊은 신앙심으로 신들의 마을과 나라를 사랑하셨다. 유다인들에게 신앙과 조국은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 마치 하나처럼 한데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그 고장의 평범한 생활을 모든 면에서 어긋남이 없이 사셨다. 두 분은 고장 사람들과 풍물 하나하나를 모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하셨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어느 것 하나 무관심하셨거나 등한히 하셨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오늘날의 세상은 바로 이 두 분의 나라이며, 어느 곳이나 두 분이 사셨던 나자렛 마을이다. 더욱이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서는 이 두 분과 주민들과의 관계가 혈육의 관계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맺어진다. 다만 이제는 이 두 분의 사랑이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 신비체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신비체의 지체들인 우리가 자신의 고장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신으로 힘껏 노력한다면,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도 우리 고장에 오시어 영혼들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주위 환경에까지도 풍성한 은총을 내려 주실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눈에 띄게 향상되고 문제는 줄어든다. 이러한 진정한 개선 효과는 예수님과 성모님이 아닌 다른 어느 누구로부터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지역 사회 안에서 믿는 이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마음가짐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더욱 튼튼하게 만든다. 이 조국이라는 낱말은 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은 영토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참된 애국심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세상에는 애국심을 나타내는 지도나 모델이 없다. 애국심과 비슷한 것이라면 전쟁 중에 드러나는 충성과 자기희생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사랑보다는 증오에서 유발된 것으로서, 엄밀히 말한다면 파괴하는 일을 지향한다. 따라서 순수한 애국심의 올바른 유형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레지오가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이라는 제목으로 단원들에게 강조해 오고 있는 바는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바치는 영성화된 봉사이다. 이러한 봉사는 영적 동기에서 우러나와 수행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봉사와 봉사를 통한 모든 접촉 기회를 영적인 것을 장려하는 데 이용해야 한다. 물질적인 면에 치중하는 봉사 활동은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의 전체 취지를 그르치게 한다. 그러기에 뉴만 추기경(John Henry Newman)은 이 충성의 근본 취지를 말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물질적 진보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위험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따라서 양자는 반드시 균형을 유지하며 발전해야만 한다.세상 사람들이여, 보라! 레지오야말로 하느님의 숭고한 사업을 위해 모든 사람을 하나 되게 하는 신비의 기사단이 아닌가? 레지오는 이 기사단을 언제라도 부릴 수 있게 준비해 두고 있지 않은가? 시인 테니슨은 아더 왕의 무용담에 나오는 기사들의 봉사 정신을 가리켜 “각기 다른 세상의 곳곳에서 기사들을 불러들여, 원탁의 기사로 함께 모았네. 영광의 무리, 사나이들의 꽃, 강력한 세상을 가꾸는 무리들의 모범이며, 한 시대를 여는 보람찬 출발이여!”라고 아름답게 읊었다. 레지오는 아더왕의 전설적인 전투를 훨씬 뛰어넘는 봉사를 수행하지 않는가?

“이렇게 교회는 동시에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로서 온 인류와 함께 걸어가 세계와 함께 함께 동일한 지상 운명을 체험하고 있다.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쇄신되고 하느님의 가족으로 변화되어야 할 인류 사회의 누룩으로서 또 마치 그 혼처럼 존재한다.공의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천상 국가와 지상 국가의 시민으로서 복음의 정신에 따라 현세의 자기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자 노력하도록 권고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차지할 영원한 도성이 없고 앞으로 올 도성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때문에 자기의 현세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바로 신앙을 통하여 각자 부름 받은 그 소명에 따라 현세 의무를 더더욱 이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40항 및 43항)“공의회 교령에서 강조하는 이러한 필요성과 의무에 대한 실천적인 응답을 1960년에 시작된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으로 알려져 있는 레지오 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운동은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레지오가 현세에 제공하는 것은 비범한 앎이나 전문 지식, 뛰어난 기술, 수많은 일꾼이 아니라, 오직 영성적인 활력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영성적인 활력이 레지오를 세계적인 단체로 이끌었고, 하느님 백성의 어떤 영역이든 레지오를 이용할 안목과 좋은 감각을 가졌다면 자신을 고양시키는 일에 이 영성적인 활력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주도권은 레지오로부터 나와야 한다. 레지오는 세속적인 것을 부추기는 일은 모두 멀리하지만, 위에 언급한 공의회 교령의 가르침의 의미에서 늘 세상에 대하여 마음을 써야 한다. 사람은 물질적인 것들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사람의 구원도 물질 세계와 상당 부분 관련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토마스 오프린 신부 Fr. Thomas P. O’Flynn / 레지오 마리애 꼰칠리움 전 영적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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