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9월 5-11일)
“이주민의 위로자시여!”, “근심하는 이의 위안이시여!”
루카복음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 우리 주 성자께서 구유에 누우시던 때, 성모님께서는 가난하게 되셨고, 가난한 이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마태오 복음은 성가정의 난민 생활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마태 1,14) 우리 주 성자께서 이집트로 가시던 때, 성모님께서는 이주민이 되셨고, 이주민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작년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이 점을 말씀하셨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소외받는 이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친히 마구간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헤로데의 위협 때문에,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 배필이신 요셉과 어린 예수님과 함께 다른 나라로 피신해 가셨습니다. 성가정은 여러 해 동안 난민으로 살았습니다.”연중 제23주일 둘째 독서 야고보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복음의 예수님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귀와 입을 열고 풀어주셨습니다. 이는 유배지에 끌려가서 마음이 불안하게 된 이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첫째 독서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예수님도 가난하셨고 난민 생활을 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도 예수님과 함께 스스로 가난을 겪으셨고, 난민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어렵고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헤아리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을 “이주민의 위로”이시며, “근심하는 이의 위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주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근심 가운데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위안을 주시며, 성모님의 사랑을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