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연중 제17주일 <믿음의 쪽지시험>

(2021. 7. 25 2열왕 4,42-44; 에페 4,1-6; 요한 6,1-15)

 

예수님 곁에는 늘 군중이 따랐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이적을 보고 권위 있는 말씀에 끌려

그분의 뒤를 쫒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주님의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도 교회를 부인하지 않고

교회가 하는 일을 좋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신앙인은 아닙니다.

오늘도 당신 주위를 맴도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통해서 믿음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그분을 믿는 일에서 머뭇대고 있는 마음들이

그리스도인의 기쁜 삶을 탐하도록,

우리 삶이 선교의 재료로 사용되기를 소원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날 주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물음은 필립보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힙니다.

느닷없이 날아든 주님의 쪽지시험

필립보가 당황했을 것도 같은데요.

오늘 우리에게도

숱하게 믿음 테스트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그날 필립보의 오답은 우리의 반면교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날 필립보는 출제자의 의도를 잘못 읽은 탓에 오답을 냈습니다.

시험 문제는 빵을 어디에서구할 수 있는지,

장소를 답하라고 요구하는데

이백 데나리온 어치로도 모자랄 것이라고 빵값 계산을 했으니

동문서답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작성된 답을 원하셨는데

세상의 방법에 따른 산술적 답을 냈으니,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엉뚱한 답에 예수님 표정이 난감했을 것도 같습니다.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는 까맣게 잊고

그분을 향한 의탁이 쏙 빠져버린 답에

주님 마음이 꽤 민망했을 것도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오답을 제출합니다.

그날 필립보처럼 주님의 뜻은 전혀 헤아리지 않고

내 생각에 따라서 결론짓기 일쑤입니다.

스스로 삶의 해답을 찾겠다고

엉뚱한 곳을 헤매다 지치는 일도 숱하게 겪습니다.

 

그분을 믿는다면서도

막상 일이 닥치면

이성적이고 피상적인 세상지론으로 치닫습니다.

세상 방식에 따라 계산하고 골머리를 썩이며

그분의 뜻을 묵살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뒤로 밀어냅니다.

주님보다 앞서서 포기합니다.

신앙의 계산법을 팽개칩니다.

이렇게 주님의 축복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단단히 마음의 차단막을 치고 지냅니다.

참으로 아픈 현상입니다.

 

때문에 오늘 안드레아가

동료 필립보의 오답에 편승하지 않고

예수님의 심중에 초점을 맞추었던 지혜가 돋보입니다.

작은 도시락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그분께 여쭈었던 단순한 안드레아의 모습이 귀합니다.

사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은 도시락이 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걸

그가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께 아뢰어 상의 드릴 때,

그분께서는 일하십니다.

안드레아의 작은 신뢰가 기적의 원료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계산에 어두운지를 느낄 수 있는데요.

그날 군중들이 먹을 빵을 딱, 적당량만 만들지 않고

모두가 배불리 먹은 다음에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가 가득찰 만큼 마구 만들어 냈다니,

주님의 수학실력은 젬병이라 싶은 겁니다.

 

그날 주님께서는

풀밭의 풍성한 만찬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느님의 손이 얼마나 큰지,

그분께서 얼마나 통이 크신지를

알려 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항상 넉넉히 한 턱 쏘기를 좋아하시는 그분의 품성을 깨달아,

무엇이든 언제이든 그분께 의탁하기를 고대하신다는 진리를 캐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일하기 원하십니다.

별 쓸모가 없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통해서

당신의 능력을 부어 주기 원하십니다.

때문에 물질을 왕으로 모시며 소유하기를 탐내는 세상에서는

할 일이 없으십니다.

마구 소비하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

억지로그분을 모시는 꼼수를 무척 괴로워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욕심이 그분을

혼자서 다시산으로 물러가도록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다시그분을 외롭게 하고 고독하게 하는 건 아닐까요.

이 산란한 주님 심정을 얼른 알아차리면 좋겠습니다.

그날 상황을 반전시켰던 안드레아처럼

얼른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까지 모두 봉헌함으로

그분께서 신나게 일하도록 해 드리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삶의 쪽지시험

복음과 믿음과 사랑의 답을 적어내는

우등생 제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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