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2주일 <기적의 바다>
(2021. 6. 20. 욥 38,1.8-11; 2코린 5,14-17; 마르 4,35-41)
‘성공’을 위해 세상 끝까지 오르고,
‘성찰’을 위해 내면 깊숙이 내려가야 합니다.
하여 ‘인생’ 사다리는 두 가지이며 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르거나 내려가는……
그러기에 인생을 종종 항해에 비유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동행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도
풍랑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항해 중에 폭풍우가 치고 방향까지 잃는다면
정말 곤란한 입장에 처해집니다.
인생의 돌발변수를 만나면
‘왜 하필 나에게?’ 불평하는 것이 일반 인간의 속성이라면,
신앙인은 그것마저도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돌발변수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인생 전체가 오류가 될 것은 뻔합니다.
그 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배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배 안에 물이 가득 차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는 평화로운 기분도,
주님을 모신 기쁨도 모조리 잊고
분주하게 물을 퍼내기에 바빴을 것이 이해됩니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여겼던 걸까요?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이 힘든 곤경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걸까요?
그제야 예수님을 깨우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그 와중에서도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이 야속했을 것이라 이해합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신 주님의 말씀이 더 야속하네요.
바람과 호수에게 명령하시어 잠잠하게 만드신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지만
그 동안 풍랑을 견디느라 애를 쓴 제자들에게
‘무서웠지?’라고 다독여주지도 않고
‘물 퍼내느라 수고했다’고 칭찬하지도 않습니다.
‘깜빡 잠이 들어서 미안한’ 기색도 없이 대번에 “왜 겁을 내느냐?”라고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나무라시다니……
믿음에는 절대적 가치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적당하고 그쯤이면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무엇과 비교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믿음은 단지 일반 사회에서의 ‘신뢰한다’는 의미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뢰란, 그 동안의 어떤 결과물들에 근거하여
우리의 이성이 내리는 판단인 데 비해,
신앙에서 말하는 믿음은 결코 이성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에서 말하는 ‘믿는다’라는 표현은
우리네 표현으로 ‘사랑에 빠진다’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신앙의 믿음은 그 대상 속으로 나를 내던져도 될 만큼의 신뢰를 뜻하는,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의지적인 영역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믿음을 바로 갖기 위해서는
상대의 능력만을 보고 섣불리 행동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대단하다 한들 나와의 관계가 흔들린다면,
그 능력만을 보고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믿음에서 반드시 토대가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믿음이 약해졌다면 이는 먼저
그분에 대한 사랑이 식었음을 돌아볼 일입니다.
주님께서 이르신 말씀,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라는 그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아무리 드센 풍랑을 만나도
휘어지거나 뒤집어지지 않는 절대적인 하느님의 뜻입니다.
때문에 믿음은 어떤 상황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그 무엇에도 동요되지 않고 틀림없이 그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호수 저쪽”에 건너갈 것을 믿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바다에 빠지자’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걸
기억했어야 옳다는 뜻이라 새깁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을 모시고 살아간다하면서도
너무나 많이 흔들리고 너무나 흔히 그분의 약속을 잊는 우리,
살아있는 믿음을 살지 못하고 말로만 생각 안에만 가둔 채
믿음인양 믿음인척 살고 있는 우리의 모자람을 나무라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믿음으로
삶의 거센 풍랑 앞에서도 의연한 우리가 되어
그분의 약속을 믿기에
전혀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살아감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고
위협하는 풍랑을 이기는 우리이기를 원합니다.
그 믿음에
깜짝 놀란 주님께서
벌떡 일어나
우리의 상황을 축복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청합니다.
믿음으로
우리 모두, 삶의 바다를
승리의 바다, 기적의 바다로 만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