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656호 2021.06.20 
글쓴이 손서정 베아트릭스 
나만의 ‘빨간 코트’를 찾아서 
- 문화적 폭력을 넘어 평화로! 

 
손서정 베아트릭스(평화·교육연구자)


 
 싱그러운 초록이 가득한 유월, 코로나19로 변화한 일상은 어느덧 두려움에서 적응으로 바뀌는 듯하다. 방역수칙을 따져가며 부모님 댁을 방문했던 어느 날, TV화면에서 흐르던 영화의 한 장면이 자꾸만 마음에 일렁인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쉰들러 리스트’, 이 영화는 유대인들을 노예로 착취해 일확천금을 노리던 사업가 쉰들러가 위험을 무릅쓰고 전 재산을 쏟아 유대인 1,098명의 생명을 살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전체영화는 흑백으로 제작되었는데, 단 몇 장면에만 등장하는 ‘빨간 코트’를 입은 어린 소녀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왜 그랬을까.
 
 쉰들러를 회심케 하는 계기로 여러 유대인과의 만남이 전개되지만, 그 이전에 그에게 강렬한 ‘빨간 코트’가 등장한다. 나치 배지를 달고 언덕에 오른 쉰들러의 눈앞에 수많은 독일 병사들이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한순간 그의 눈동자는 혼돈 가운데 피해 다니던 ‘빨간 코트’를 입은 어린아이에게 고정된다. 아이의 모습을 뒤쫓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하고, 어느새 그 흔들림은 나의 눈동자 속으로 옮겨왔다. 20세기 영화에서 부각시킨 ‘빨간’ 색상이 21세기에 뛰고 있는 나의 심장을 건드린 것이다. 
 
 어쩌면 일상에서 평화를 원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대한 행위보다는 폭력을 감지하고 그 변화의 씨앗이 될 ‘나만의 빨간 코트’를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평화학에서는 복잡다단한 평화를 설명하기 위해 신체적·언어적인 ‘직접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소극적 평화’로, 불평등과 억압·착취와 같은 사회의 ‘구조적 폭력’까지 제거된 상태를 ‘적극적 평화’로 구분한다. 이런 폭력들을 정당화하는 근원적인 폭력을 ‘문화적 폭력’이라 부르는데, 이는 우리가 믿는 종교와 사상, 언어와 예술, 과학 등 전체 문화 안에서 교묘히 자행되어 폭력을 합법화시킨다. 
 
 전범국으로서 철저히 성찰하는 현재의 독일이 당시에는 어떻게 그런 범죄를 저질렀을까. 당연하게 여기도록 일상에 주입된 ‘문화적 폭력’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른들의 방향 상실이 부르는 끔찍한 결과가 바로 ‘어린이들의 죽음’이며, 주의 깊고 깨어있는 시선으로 시대의 징표를 응시하라고 호소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발견해야 할 ‘빨간 코트’는 무엇일까. 내 일상의 변화 안에서 나를 되돌아본다.
 
※ 손서정 연구자는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제9기 사회교리학교(입문과정) ‘평화’ 강의를 예정하고 있습니다.(11월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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