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이야기
2021.06.08 15:53

畓雪野中去 不守頀亂行 今日我行跡 隨作後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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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을 하려니 새벽부터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잠을 설쳤고, 유산균과 소화제를 먹였으나 여느때와 다르게 오바이트까지 했다는 말에 맘이 무거웠습니다. 가장인 제가 변변치 못해 이곳저곳을 이사하게 만들었고, 모라동으로 다시 이사오기로 결정할 때 다시 전학가기 싫다며 울고불고 하던 애를 겨우 진정시켜 이사를 왔는데, 전학간 첫날부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리 건강하던 놈이 배가 아프다고 잠까지 설쳤을까 싶어 맘이 너무 안좋았고, 겨우 잠든 아들의 모습이 안스러웠답니다.

오전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학교 마치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전히 배가 아파 새로 전학간 학교서도 수업내내 양호실에서 누워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병원이라면 평소 질색하던 놈이 아빠랑 병원에 가보자는 말에 웬일인지 선듯 알겠다고 하는 대답에 얼마난 고통스러웠었나 싶어 미안한 맘이 더 커졌습니다.

얼른 집으로 와서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상가 내과를 갔었지요. 나이든 의사분이 아픈 배를 탁탁 짚어보시더니 대뜸 얼른 외과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시더라구요. 급성충수염이라고 판단되고, 자신의 판단을 100% 확신 한답니다. 흔히 말하는 급성맹장염이고, 얼른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였죠. 순간 아이의 얼굴이 심하게 공포에 질리는 모습이였고, 이 뜻밖의 상황이 아빠인 저에게도 당황스러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례 삼선병원으로 가서 급하게 몇가지 검사를 받고 저녁무렵에 긴급 수술 시간이 잡혔습니다. 일터에서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달려온 애엄마의 얼굴도 새파랗게 변했고 단순히 배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수술을 하고 몇일간 입원해야 한다는 현실에 아이도 겁이 너무 났나봅니다. 속으론 이 모든 고통이 다 제가 잘못한 탓인듯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외래진료가 끝난 텅빈 병원복도에서 겁먹은 아이를 안고 같이 우는 아내의 얼굴을 맘아프게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와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가장으로서 처음으로 우리 같이 기도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우리 가족을 하느님은 꼭 지켜주시고 은혜를 주실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이럴 때 하느님빽을 한번 우리 써보자고 말하고 말았지만 막상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저도 막막했습니다. 이내 아내와 아들이 진정을 하고 같이 손을 잡는 그 순간, 그 텅빈 긴 병원복도 저끝에서 웬일인지 수녀님 한분이 천천히 걸어오시고 계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기적 같은 순간이였지요. 지나시는 그 수녀님을 붙잡고 제가 간청을 드렸답니다. “수녀님, 수녀님? 저희 아들인 제노가 오늘 갑자기 수술을 해야하는 병을 얻어서 저희 가족이 마침 같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려고 했답니다. 잠시 제 아이를 위해 같이 기도를 올려주시면 저희 아이와 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될겁니다. 잠시 부탁드려도 괜찮을런지요?” 그 수녀님께서는 흔쾌히 시간을 내어 주셨고, 당장 아이를 보듬어 안으며, 진지하게 아이를 위해 저희와 같이 기도를 올려 주셨습니다. 순간 아이의 얼굴에서 당황함이 사라지면서 다시 의외로 엄마아빠에게 자기는 이제 괜찮으니 걱정하시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를 하더군요. 제 평생 처음 경험해본 기도의 힘이였습니다. 벌써 7년전의 일이지만 저는 그 순간 왜 저희 가족앞에 우연히 수녀님이 한분이 나타나게 하신건 바로 하느님이 저희 가족에게 주신 큰 은총이라고 믿습니다.       

Ps.
이러했던 그 녀석은 지금 벌써 고2 180센티에 100킬로에 육박하는 덩치로 늘 아빠를 내려다보고 있답니다. 성당을 잘 안오려는 녀석을 다그치긴 하지만 부모로서 너무 아들의 신앙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냐고 자책도 해봅니다. 강제로라도 끌고 다니는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저와 제 아내가 부모로서 평소 신앙에 어긋나지 않은 모습을 늘 자식에서 보여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이 녀석의 맘속에 먼지처럼 쌓이고 쌓이면 그게 곧 자식의 신앙심에 거름이 되고 마중물이 되겠지요? 우리가 늘 깨어있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에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서산대사의 옛 말씀중 畓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守頀亂行(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隨作後人定(수장후인정) 눈이 새벽에 길을 떠나는 나그네는 길을 갈지자로 걷지마라. 뒤따르는 사람들은 발자국을 밟고 가거늘. 이란 문구가 새삼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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