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가톨릭부산 2021.03.03 10:44 조회 수 : 11

호수 2641호 2021.03.07 
글쓴이 한옥선 율리아 
오후 5시

 
한옥선 율리아 / 온천성당

 
   오후 5시,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연인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퇴근시간을 준비한다.
 
   하지만 경찰 지구대, 파출소의 시간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할까. 물론 낮에 사건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체면을 중시하고 주위의 눈길을 의식하게 되는 낮에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 해결의 접점을 찾을 수가 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가는 시점부터 긴장의 끈은 저절로 팽팽해진다.
 
   오후 6시쯤 가게 앞 길에서 싱싱카를 타고 잘 놀던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다급한 신고다. 급하게 인적사항과 사진을 관내에 배포하고 아이를 찾던 중에 아이가 돌아왔다는 반가운 전화가 와서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엄마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고, 아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따라 울고 있다.
 
   잠시 후 울음을 그친 아이에게 어디를 갔냐고 하니 아동병원 5층에 언니를 따라 올라가 놀고 왔다고 한다. 엄마가 “그 언니 아는 언니야?”하고 물으니, 아이는 “아니 같이 놀다 보니 이제 아는 언니가 되었어.”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여 주위 어른들이 모두 웃고 말았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를 지켜주시는 매듭을 푸는 성모님을 향해 감사 기도를 바친다.
 
   이런 일도 잠시, 이어지는 신고에 출동도 잦아진다. 가정폭력, 교통사고, 술과 관련된 폭행 시비 등 밤새 들어오는 신고처리에 파김치가 된 아침, 아름다운 햇살이 일도 마무리됨을 알려주는 것 같다. 새로 출근한 직원들과 따뜻한 차 한 잔에 인수인계를 마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들...
 
   이렇듯 생활 속에서 겪는 각종 희로애락과 관련된 일들을 겪으며 신앙 안에서 함께 하는 경찰 교우 모임이 ‘성경회’다. 부산경찰청 1층에는 ‘미카엘성당’이라는 작은 경당도 있고, 이곳에서 매주 미사도 봉헌하고 피정도 함께하며 힘든 일들을 얘기하며 하느님 안에서 다시 힘을 얻는다. 파견되어 오신 신부님, 수녀님과 시간들을 보내며 더 가까운 하느님 나라를 느끼기도 한다.
 
   이제 나의 시간도 오후 5시임을 실감한다. 저를 창조하셨고,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셨고, 지난 밤을 지켜 주셨음에 감사하며,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는 착실한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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