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사순 제2주일<사제란 신자들을 위해서 사용되는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최양업 토마스 사제는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이성례 마리아 사이에서 182131일 충청도에서 여섯 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증조부 할아버지부터 믿음이 시작된 집안인데요. 훗날 최양업 신부님은 아버지 최경환은 장을 보러 갈 때는 물건 중에서 제일 나쁜 것이나 흠 있는 것을 골라서 사 왔습니다. ‘제일 나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런 사람이 없으면 이 불쌍한 장사꾼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소?’ 라고 말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렇게 이웃을 향한 배려가 깊은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란 최양업이었기에 성무 활동 중에도 항상 어렵고 가난한 처지에 있는 교우들을 먼저 배려하였다고 합니다. 기해박해 때 대부분의 신자들이 배교하고 풀려났지만, 아버지 최경환은 배교를 거부하였고 옥사를 당하게 됩니다.

한편 남편의 옥사를 지켜본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당시에 갓난아기였던 막내에 대한 모성애로 마음이 흔들려 배교했는데요. 하지만 큰 아들 최양업을 중국으로 보냈다는 죄목으로 다시 잡혀 왔고, 마침내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가 됩니다.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양업은 최방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김대건 안드레아와 함께 마카오로 가서 프랑스 선교사들로부터 라틴어, 프랑스어, 교리, 성가, 철학,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김대건은 늘 두통이나 요통을 앓는 허약한 체질이었지만 최양업은 아주 건강했다는데요. 김대건과 최양업 두 신학생에 대한 선교사들의 평가는 그들이 만 24세가 되었더라면 모두 사제품까지 받았을 것이다라고 증언했을 만큼 최상급이었는데요. 드디어 18441210일 부제품을 받기에 이릅니다.

덕행과 재능으로 조선에 큰 희망이 되고 있는 조선인 학생으로 이름은 최 토마스입니다라는 증언은 우리에게 최양업 신부가 어떤 분이었는지, 그 당시 조선교회가 얼마나 큰 기대를 걸었던 인물이었는지를 느끼게 하는데요. 부제 서품을 앞두고 있던 최양업이 제 부모와 형제들을 따라갈 공훈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저의 신세가 참으로 딱합니다. 그리스도 용사들의 그처럼 장렬한 전쟁에 저는 참여하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정말 저는 부끄럽습니다! 이렇듯이 훌륭한 내 동포들이며, 이렇듯이 용감한 내 겨레인데, 저는 아직도 너무나 연약하고 미숙함 속에 허덕이고 있습니다라는 편지글을 남겼습니다. 그가 사목자로서 지향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실 함장의 요청에 따라서 조선으로 가는 에리곤호에 김대건과 메스트르가 탑승하고, 최양업은 파보리트호를 타고 조선으로 입국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모두 실패하고 맙니다.

페레올 주교의 입장에서는 선교사가 한 명도 없는 조선 선교지에 들어가는 것이 급선무였던 만큼 조선으로 들어가는 입국로를 개척하는 일이 절실했습니다. 주교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김대건 부제에게 사제품을 주어 함께 입국한 뒤에 최양업 부제는 조선에 들어온 후에 사제품을 줄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김대건 신부는 사제 수품 13개월 만에 순교로 삶을 마감하였고, 최양업 부제는 조선 입국이 여의치 않아서 무려 4년 동안이나 국경주변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1849년 사제품을 받고 난 후에야 겨우 조선에 입국할 수가 있었습니다.

김대건 부제가 사제품을 받은 후에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에 들어간 뒤 최양업 부제역시 메스트르 신부와 함께 육로를 통한 입국을 꾸준히 시도했는데요. 그러던 중에 1847년 봄에 이르러서야 동료 김대건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듣게 됩니다. 동료의 순교를 마음 깊이 애통해했던 최양업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떠나보낸 동료 김대건 안드레아가 천상 수호자로 자신을 지켜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페레올 주교에게 받은 프랑스어 책 순교자들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에 매진했는데요. 이것이 훗날 79위 복자로 탄생하는 데에 소중한 기초 자료가 되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는 184912월 말에 육로를 통해서 조선입국에 성공하는데요. 여섯 번의 국내 입국시도 끝에 성공한, 지난한 과정이었고 유학길에 오른 지 14년 만의 귀향이었습니다. 그는 입국 후에도 6개월 동안을 거의 쉬지 않고 주로 남부 지역 5개도를 순방했는데요. 그가 이동했던 거리가 약 5천 리 정도이며, 순방한 교우 숫자가 3,815명이라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를 단순한 숫자로 볼 수 없는 것은 박해의 위험 속에서 감행한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가 목숨을 건 사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지에 숨어있는 교우촌을 찾아 매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극한의 여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힘들고 고된 일정을 살았던 최양업신부님의 보고서를 읽으면 마음이 뭉클한데요.

단 한 번만이라도 사제의 얼굴을 보는 것이 (이들에게는) 큰 은총입니다. …… 우리가 어떤 교우촌에 도착하면 어른, 아이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사제에게 인사하려고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 그들은 공소 회장들을 연방 들여보내어 어서 인사하고 사제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졸라 댑니다. …… 어떤 사람들은 저를 못 떠나게 붙들려는 듯이 저의 옷소매를 붙잡고, 어떤 이들은 제 옷깃에 그들이 보내는 애정의 정표를 길이길이 남기려는 듯이 제 옷자락을 눈물로 적십니다. …… 어떤 때는 좀 더 오랫동안 제 뒷모습을 지켜보려고 산등성이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이런 교우들의 간절한 사랑이 최양업신부님께 지치지 않는 힘의 원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최양업 신부가 사목한 시기는 공식적인 박해는 없었지만 천주교에 대한 여론은 여전히 좋지 않았습니다. 지역에 따라서 박해는 계속 이어지는 중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교우들의 영적 사정에만 정성을 다한 것이 아니라, 교우들의 생활 전반에 대하여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품었는데요. 마침내 스승 신부님께 두 가지 요청을 올립니다. 첫째는 물을 정화하는 방법에 대한 문의였고, 두 번째는 조선 신자들이 좋아하는 십자고상, 성패, 상본 등을 보내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116개월의 사제 생활 동안, 최양업 신부는 해마다 9-10월 사이에 스승 신부에게 연말 보고서 성격의 편지를 보냈는데요. 최양업 신부는 당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전교 활동과 교리 공부에 유용한 두 가지를 밝히는데 바로 조선의 상복(喪服) 제도와 한글입니다.

부모의 상을 당하면 자식들은 삼 년 동안 대죄인으로 자처하고 최대한으로 죄를 뉘우치는 보속 생활을 합니다. 방갓을 머리에서부터 어깨까지 덮어써서 땅만 내려다 볼 수 있게 하고, 또 얼굴 가리개로 입에서부터 코와 눈까지 얼굴 전체를 전부 가리고 다닙니다. 만약 이러한 풍속이 없었더라면 서양 선교사 신부님들이 전교하고자 한 발짝도 외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조선에 머무르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어서 둘째로 배우기가 아주 쉬운 한글이 교리 공부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고 증언하고 있는데요. 쉬운 한글 덕분으로 세련되지 못한 산골에서도 신자들이 빨리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구원을 위한 훈계를 받을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에 귀국한 뒤 최양업 신부의 선교 활동은 한마디로 발로 뛰는 사목, 교우촌을 찾아가는 사목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목 방문은 육 개월 동안 쉬지 않고 5개 도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 127곳을 다니며 3,815명의 교우들을 만났는데, 이는 당시 전국 신자 수 11,000명의 약 35퍼센트에 해당합니다. 그는 해마다 한 번씩 아무리 오지도 거르지 않고 산골 교우촌들의 신자들을 찾아가 방문하였습니다.

한 공소에 고해자가 마흔 명 내지 쉰 명이 있어도 그들 모두에게 하루 안에 고해성사를 다 집전해 주어야 합니다. 반면 고해자가 두 명이나 세 명밖에 없는 공소에서도 다음날 미사를 봉헌하고 신자들에게 성체를 배령하게 해 주어야 하기에 하루를 묵어야 합니다. 저는 밤에만 외교인들 모르게 교우촌에 도착해야 하고, 공소 순방이 끝나면 한밤중에 모든 일을 마치고 새벽녘 동이 트기 전에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이 짧은 기록에서 우리는 신부님의 고단한 여정의 무게가 얼마나 수고롭고 무거운지, 가늠하게 됩니다.

 

최양업 신부는 사제양성에도 힘을 썼는데요. 세 명의 신학생을 선발하여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박해 시기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가장 근간이 되는 기도서와 교리서가 최양업 신부의 노력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여성 신자와 하층민 신자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암송하기 쉬운 대중적인 교리서요 신심서인 한글본 천주가사를 만들었는데, 이는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영적 성장에 자양분이 되는 소중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온 마음과 몸을 교회와 교우를 위해서 헌신했던 최양업 신부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것처럼 스승 신부께 인사를 드리고 있는데요. “이것이 저의 마지막 하직 인사가 될 듯합니다. 저는 어디를 가든 계속 추적하는 포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 불쌍하고 가련한 우리 포교지를 여러 신부님들의 끈질긴 염려와 지칠 줄 모르는 애덕에 거듭거듭 맡깁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역과 관련된 편지가 있어서 그 부분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간월이라는 교우촌에는 교우들이 상당히 많지만 모두 가난하여 공소 집이 너무 초라하였습니다. 어떤 외교인이 와서 보고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집 꼴이 이래서야 쓰겠는가.’라고 하면서 자기가 더 좋은 공소 집 하나를 지어 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과연 작년에 그 외교인은 자기 비용으로 훌륭한 공소 집을 지어 주었고, 장식품으로 화려한 촛대까지 사 주었습니다. 저의 관할 구역뿐 아니라 조선 전국적으로 이곳만큼 훌륭한 공소 집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기뻐하는데요. 그 날 그 터에서 비롯된 사랑이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의 우리믿음의 기초였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게 됩니다.

땀의 순교자로 불리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116개월에 걸친 사목 생활은 교우촌과 공소 방문을 통해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사를 집전하며, 어려운 삶들을 보듬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사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 실천했던 지혜인임을 느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이 생각했던 사제의 의미를 감히 추리해 보았는데요. 참 엄청납니다. 최양업 신부님에게 사제란 신자들을 위해서 사용되는 하느님의 사람이어야 하고 신자들에 의해서 쉼없이 이용되는 하늘의 도구였습니다. 이 진리를 온 마음과 온 몸으로 감행해 나갔으니 진정 사제의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기막힌 상황에서도 몸사리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극기에 가까운 사목 활동을 살아내신 최양업 신부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고백합니다.

이번 강론을 준비하기 위해서 최양업 신부님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동안 제가 살아온 사제의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강의는 저에게도 아주 특별한 의미로 새겨질 것입니다. 최양업신부님보다 곱절이 넘는 세월을 사목자로 지내면서 과연 주님께서 소중해하는 엑기스가 얼마나 될까 싶었습니다. 이제라도 최양업신부님을 통해서 제 영을 깨워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찾아가는 사목자, 신자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사목을 결심했습니다. 부디 여러분께서 저의 이 다짐이 스러지지 않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성인품에 어서 오르시어 더욱더 우리 사제와 신자들의 삶에 귀감이 되기를 마음모아 청해봅니다. “주님! 당신을 위해서 땀의 순교를 이룬 최양업 토마스 사제에게 당신의 영광을 허락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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