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이야기
2021.02.23 14:26

돈으로 살수는 없지만 돈에 담을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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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몇 년전 친한 친구의 아버지께서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경황이 없이 진행된 장례 내내, 오열하는 친구녀석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답니다. 시간이 흘러 좀 마음이 진정될 무렵, 그 친구랑 소주 한잔 하는 자리에서 이야기 하더군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주전 와이프랑 애들이랑 휴일 날 본가에 갔었는데, 와이프는 시어머니와 부엌일을 하고, 애들은 마당에서 잘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기는 피곤한 맘에 구석방에서 낮잠을 잤답니다. 다음날 출근을 하려고 준비를 하다가 친구는 우연히 자기 지갑속에 자기도 모르는 만원짜리 몇장이 더 있는걸 알았다네요. 와이프가 몰래 넣어두었을리도 없고, 생각해보니 전날 본가에서 낮잠을 잘 때 머리맡에 지갑과 휴대폰을 놓아두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보시고 궁금하셨나봐요. 요즘 아들이 어찌 사는지 말입니다. 우리 나이 월급쟁이가 평소 지갑에 돈을 얼마나 넣고 다니겠습니까? 썰렁한 막내 아들의 지갑속을 보시고, 아버지가 자기 지갑에서 돈을 옮겨 놓으셨겠지요. 친구는 다시 그 돈으로 아버지께 맛난 것 사드릴려고 했는데, 차마 고맙다는 말도 끝내 못했다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 돈으로 차라리 좋아하시는 약주라도 드셨다면 내 마음이 덜 아팠을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친구는 평생 아버지를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갈겁니다.

  2. 저는 외할머니와 어릴적부터 함께 살았습니다. 일찍 홀로되셔서 가족이 없는 외할머니를 부모님이 모셨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외할머니께 얼마나 제가 많은 엉석을 부렸을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첫 월급날 저는 난생 처음으로 할머니께 용돈을 드렸습니다. 많은 돈도 아니고 겨우 3만원을 말입니다. 생색은 엄청낸 듯 합니다. 이제부터 제가 매달마다 할머니께 용돈을 챙겨드리겠노라고. 엄청 큰 소리를 쳤죠. 그리고 매달 25일이 되면 한동안은 3만원, 5만원씩 용돈을 드린 듯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 못갔습니다. 연애한다고, 결혼한다고 하면서 설그머니 용돈드리는 일은 줄어들다가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어요. 그 후 장가를 가고, 첫 신혼집은 본가근처였지만 애가 생기고 나서부터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사를 하기로 결정을 했죠. 아들내외를 멀리 보내시는 부모님과 할머니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겁니다. 이사 바로 전날, 바쁘게 짐을 싸고 있는데, 할머니가 전화를 주셨어요. 잠시 내려와 보라고요. ‘바쁜데 왜 내려오라는거야?’ 짜증을 내면서 할머니 방에 들어가니 방바닥에 웬 예금통장과 도장이 놓여 있더군요. “이거 니가 이사하는데 보태쓰라”면서 내 놓은 그 통장, 그 걸 열어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첫 입금일이 1997 12 26일에 3만원, 1998 1 26일에 5만원 등등. 매달 드린 그 쥐꼬리만한 용돈을 할머니는 내 이름으로 된 계좌에 꼬박꼬박 쌓아놓고 계셨죠. 손자가 준 그 돈을 차마 할머니는 본인에게 쓰시지는 못했던 겁니다. 다시 집으로 올라오는 내내 엉엉 울었습니다. 그 날 저는 통장을 들고 온게 아니라 할머니의 마음을 무겁게 가져왔고, 돌아가신지는 십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못난 손자의 맘속에서 살아계십니다.

  3. 저는 위령미사를 한번도 참석해본적이 없습니다. 집안이 카톨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설에 새벽 위령미사에 발열체크를 할 봉사자가 없다는 말에 처음으로 명절날 위령미사를 한번 참석해 보고 싶은 마음에 선뜻 제가 봉사 하겠노라 자원했지요. 설날 아침에 처음 드리는 위령미사가 끝날때, 갑자기 신부님께 “설날이니까 제가 세배를 드리겠습니다”하시면서 우리 신자들에게 절을 하시는 겁니다. 얼떨결에 우리도 목례로 답례를 했지만 참 당황되는 순간이였습니다. 더욱 놀란건 신부님께서 “세배를 했으니 세뱃돈을 드려야죠! 많은 분들께 드려야해서 큰 돈은 아니고, 천원짜리 한장은 너무 섭섭하니 두장씩 드릴게요” 하시며 성전입구에서 모든 신자들에게 무려 2천원을 세뱃돈으로 주셨습니다. 어떻게 이걸 받지 마음속으로 너무 당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세뱃돈을 받은 모든 교우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 돈을 받은게 아니라 우리 새 신부님께서 우리 본당 신자들에 대한 마음을 주신거고, 그 마음을 받아가는 저의 감동은 꽤 오랫동안 제 가슴을 훈훈하게 있을 듯 합니다.

    KakaoTalk_20210220_11353500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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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아비님 글 잘 읽었습니다 ㅎ..
    친구 아버지 이야기며, 할머니 용돈 이야기..
    마음이 읽어지네요.
    부모님 사랑은 돌아가실 때 비로소 멎는것 같아요.
    우리는 그 마음을 다 못읽고 빈 자리에서 저도 비로소 읽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참 지극하셨네요
    허수아비님의 작은 용돈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어요
    비록 이런저런 일로 꾸준히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을 넘어 할머니께도 잘하셨네요.
    할머니의 사랑 감동이었습니다
  • ?
    박데레사 2021.05.09 19:20
    아름다운 좋은 글 감사합니다.

    홍보분과장님 봉사직을 맡으시고, 분주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은

    참 아름답고 고귀하게 보입니다.

    항상 사랑을 드리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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