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법과 신앙
최성욱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한국 사회에서 낙태법 찬반 논쟁의 중심에는 1973년 제정된 모자보건법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낙태 허용한계를 설정한 것입니다. 우생학·유전학적 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과 준강간, 법률상 결혼할 수 없는 친인척 간의 임신, 모체의 건강의 이유로 일부 낙태를 허용한 것입니다.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본격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에 대해 위헌소원이 제기되면서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일각에서는 모자보건법에 제시된 허용한계를 형법으로 이관하여 합법적 낙태 지원근거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있고, 일각에서는 낙태법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낙태 논쟁의 중심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낙태의 음성화’, ‘여성의 건강’, ‘장애아 혹은 미혼모 출산’, ‘태아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는지’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보호 사이에서 갈리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이런 논의와는 별개로,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2020년 12월 31일까지 새로운 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낙태죄 형벌 조항이 사라진다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소한의 낙태 허용주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교회를 중심으로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명운동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인간생명』(1968)과 『인공유산 반대 선언문』(1974), 『가정 공동체』(1981), 『생명의 복음』(1995) 등 생명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일관되게 낙태죄를 엄격히 다루었습니다. 『사랑의 기쁨』(2016)에서도 “어른들의 실수로 아이들을 처벌한다면, 어떻게 인간의 권리와 아이들의 권리에 대한 엄숙한 선언을 다룰 수 있겠는가”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힙니다. 생명의 탄생을 과도한 비용의 문제로 다루거나, 태아를 실수 혹은 무가치한 대상으로 여겨서는 안되며, 탄생의 순간은 축복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윤리신학이 ‘양심의 형성’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질문은 이렇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도덕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국가법’이 다른 가치를 안내할 때, 우리는 어떤 양심적 선택을 할 것인가?” 거룩한 탄생을 기다리고 생명을 경축하는 대림·성탄 시기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도의 시간(영성)과 지혜로운 응답의 시간(도덕성)을 청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