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627호 2020.12.13 
글쓴이 최성욱 신부 
생명을 환대하는 그리스도인의 꿈

 
최성욱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인간을 통해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다. 오직 인격들만 죽는다.” 인간만이 죽음을 걱정하고 해석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인간 행위’(actus humanus)입니다. 낙태와 교회의 가르침에 관한 글을 부탁받았을 때 로베르트 슈패만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생명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는지 알려주고,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영성(spirituality)을 반영합니다. 낙태에 대해서도 국가와 사회가 다양한 해석을 내어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나누고 싶은 질문은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것인가?” 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까닭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삶의 최우선 가치를 발견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은 인간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먼저 ‘하느님이 하신 일’(actus Deus)이기 때문입니다.
 
   아킬레 음벰베는 ‘죽음권력’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원리를 ‘시신정치’라고 불렀습니다. 죽음권력은 타인의 신체와 생명을 처분 가능한 상태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주권은 누가 처분 가능한 대상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능력입니다. 마치 없는 인간처럼 취급되는 우리 사회의 청년 실업자, 계약직 노동자, 실직자, 이주 노동자의 모습은 낙태담론에서 태아가 처한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처분 가능한 인간을 골라내는 데 익숙하고, 한 아이의 탄생을 과도한 비용의 문제로 다루거나, 어른들의 실수니까 먼저 제거해도 되는 대상으로 다루는 모습은 ‘시신정치’에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 버려져도 되는 인간은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낙태담론의 중심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논쟁이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에는 생명과 죽음의 순간을 선택과 권리의 문제로 다루려는 시각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꿈은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로 생명 탄생의 순간을 먼저 생각합니다. 나아가 낙태를 경험한 여성들을 교회는 염려합니다. “고통스러운 결정의 상처를 마음 깊이 담고 있는 많은 여성을 만났습니다.”라고 고백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서한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어려운 결정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분들을 환대하는 신앙 공동체의 사명을 같이 실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환대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환대의 덕을 실천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꿈이 우리 사회 안에서 피어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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