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1 14:52

가정교리 36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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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36 과 - 예수님은 정말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나요?

 

《네, 정말로 돌아가셨어요.

 

예수님은 파스카 축제 전날 오후 3시경에 돌아가셨어요. 오늘날 우리는 이 날을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라고 불러요. 예수님은 너무나 많은 채찍질로 피를 흘리셨고 십자가 위에서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고 돌아가셨어요. 로마 병사가 예수님이 정말 돌아가셨는지 확인하려고 그분의 옆구리에 창을 찔러 보았는데, 그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어요. 이렇게 그분은 숨을 거두셨어요. 십자가에서 그분의 시신을 내린 후, 깨끗하게 닦아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새 무덤에 모셨어요.

 

무덤은 큰 돌로 막혀 있었어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여인들이 바로 이 무덤을 찾아오는데…….》(『Youcat 프렌즈』p.71)

 

예수님께서는 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뒤,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에게 붙잡히셨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심문과 조롱을 받으시다가 다음날 아침,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져서 살이 으스러지는 무참한 채찍질을 당하신 뒤, 금요일 오전 9시 경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까지 무려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며 고통을 겪으시다가 오후 3시 경에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3년의 짧은 생을 사시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거나 죄를 짓거나 잘못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은 자기들에게 반역하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사실 예수님은 로마 제국에 반역한 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 주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주고, 버려진 사람들을 따뜻이 돌보아 주고,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병고를 메고 가셨으며, 나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십자가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병사의 창에 옆구리를 찔리신 것도 나의 악행 때문이고, 로마 병사들의 채찍질에 온 몸이 으스러진 것도 나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평화를 위하여 예수님이 징벌을 받으셨고, 예수님의 온 몸에 새겨진 끔찍한 상처로 나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길 잃은 양처럼, 내 맘대로 죄악과 어둠 속에서 살아갔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의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아들 예수님께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나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이 놀라운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단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그저 묵묵히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자기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아들 예수님의 이 전적인 순종이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어 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금요일의 주님 수난 예식 때,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배하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보라, 십자 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다 와서 경배하세.”

 

암브로시오 성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인간 영혼을 받아들이실 때 영혼의 감수성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으로서는 고통을 겪지 않으셨지만 인간으로서는 고통을 겪으실 수 있었고, 하느님으로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우리의 두려움을 몸소 짊어지신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위험에 빠진 인간이라면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그분은 인간으로서 고통을 겪으시고, 인간으로서 우시고, 인간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신앙론』2,7,56)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죄를 짓고 헤매는 우리를 떠맡으심으로써,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으신 일이 없으셨지만,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써 당신의 죽음이 죄인인 우리들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코린 5,21)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죄인인 우리 모두를 위하여 당신의 외아드님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고,(로마 8,32 참조) 아드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우리가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해주셨습니다.(로마 5,10 참조)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당신의 아드님을 십자가 죽음에 넘겨주심으로써, 당신의 구원 계획이 우리의 그 어떤 인간적인 공로보다 앞서 존재하는, 놀라운 사랑의 계획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9-10)

 

사도 바오로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