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3 09:12

가정교리 31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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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31 과 - 베들레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곳이에요.

 

로마 황제는 온 천하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어요. “내 제국에 얼마나 많은 시민이 살고 있는지 알아야겠다. 즉시 인구 조사를 시행토록 하라!”

만삭이 된 마리아는 인구 조사 때문에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떠났어요. 하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머물 곳을 찾지 못했어요.

 

남은 곳은 외양간뿐이었어요. 깊은 밤중,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어요. 갓난아이를 위한 요람을 찾을 수 없었던 마리아는 예수님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였어요. 한편, 멀지 않은 곳에는 양을 돌보던 목동들이 있었어요. 잠을 자던 목동들은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너무나 놀랐어요.

 

천사들은 목동들에게 말했어요.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구세주가 태어나셨다!” 목동들은 곧바로 천사가 알려 준 곳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게 되었어요. 이처럼 구세주 예수님을 처음으로 경배한 이들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목동들이었어요.》(『Youcat 프렌즈』p.57-59)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 9,5) 이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태어난 아기가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합니다. 아기는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지만, 부모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아기를 주는 존재는 누구입니까? 누가 우리에게 새로운 한 생명을 줄 수 있습니까? 하느님!

 

생명의 주인이시고 생명을 창조하신 분만이 새로운 생명을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모두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아기는 하느님께서 그 가정에 주시는 선물입니다. 세상에 생명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가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아기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선물입니다.

한 아기가 태어나면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이 와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합니다. 보통 아기가 태어나면 병원이나 아기 부모님의 집으로 달려가는데, 목동들이 달려간 곳은 그런 곳이 아니라, 마구간이었습니다. 왜 이 아기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야 했습니까?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루카 2,7)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는 가축들의 숙소에서 아기를 낳아야만 했습니다.

아기 예수의 부모는 해산날이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국가에서 황제가 명령한 호적 등록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루카 2,1) 오늘날이면, 이런 상황일지라도 미리 인터넷으로 숙소를 예약하고 안전하게 길을 떠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가서 방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젊고 가난한 부부가, 그것도 부인이 만삭의 몸으로 힘겨워하는 중에 방을 찾았지만, 방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정말 방이 단 하나도 없었을까요? 지금 내가 어느 숙소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젊은 만삭의 부부가 찾아와서 방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을까요? ‘이 늦은 밤에, 부부는 가난해 보이고, 게다가 저 부인은 곧 아기를 낳을 것 같고, 아기를 낳으면, 의사나 간호사도 불러야 될 것 같고...’ 만약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이 있어도 방이 없다고 이야기하겠죠. 그리고 문을 닫아 버리면 그만입니다. 내가 아는 부부도 아니고, 그 부인이 곧 아기를 낳아야 하는 상황 등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고, 그저 남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부가 비싼 옷을 입은 돈 많은 부자였다면, 힘 있는 권력자였다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내 방을 비워서라도 그 부부를 데리고 들어와서 언제 아기를 낳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해서 이 아기는 가축들이 사는 마구간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 부부가 이런 일을 겪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당장 달려가서 그 여관 주인들 멱살 잡지 않았겠어요?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해산 직전인 산모를 보고도 어떻게 빈 방 하나 내주지 않을 수 있냐고’ 격분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느 늦은 밤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의 무관심과 이기심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이 아기의 부모라고 생각해 봅시다. 내가 혹은 나의 부인이 아기를 낳기 직전입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인데 그 어느 집주인도 방 한 칸 내주지 않습니다. 그때 내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집주인들의 철저한 무관심과 이기심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단 한 명만이라도 문을 열어주고 방을 내어주면 되는데,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면 정말 내 마음이 어떨까요?

 

다시 한 번 내가 어느 숙소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어느 늦은 밤에 누군가가 우리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내가 생판 모르는 가난한 부부이고, 만삭의 부인이 곧 아기를 낳을 것 같고, 내가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될 것 같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방이라도 그 부부에게 내어주었다면, 그리고 그 밤에 내 방에서 그 부인의 아기가 태어났다면, 내 마음이 정말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런 기쁨은 정말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진정한 기쁨입니다.

 

오늘 가정교리에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나의 무관심과 이기심, 그리고 닫혀 있는 마음은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은, 내가 그동안 어떤 집주인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또 어떤 집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 내 안에 참된 기쁨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없다면 왜 없는지도 돌아보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