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8 14:26

가정교리 22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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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22 과 -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니 좋았다.”라고 하셨는데 왜 이 세상은 더 이상 창조 때처럼 좋지 않나요?

 

《이 세상이 무질서해 보이는 건, 바로 인간이 나쁜 일을 하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죄를 짓는다.”라고 표현해요. 사실 우리는 “자, 오늘부터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거야!”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죄의 유혹에 쉽게 걸려 넘어지는 모습으로 태어났거든요. 성경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 때부터 생기게 되었다고 알려 주는데 우리는 이것을 ‘원죄’라고 불러요.》(『Youcat 프렌즈』p.45)

 

첫 번째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선하게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고, 자기 자신과 주변의 피조물들과 조화를 이루게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원초적인 거룩함의 은총이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과 일치하는 동안에는 죽지도 않고 고통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쾌락과 탐욕과 같은 욕망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흠 없고 질서가 잡힌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죄를 지음으로써 이 모든 원초적인 의로움과 조화로운 상태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께 순명하지 않게 된 배경에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유혹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질투심 때문에 아담과 하와를 죽음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창세기에서 ‘뱀’이라는 표상으로 등장하는 이 목소리는 사탄 또는 악마라 불리는 타락한 천사입니다. 악마와 모든 마귀들은 하느님께서 본래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그들 스스로 악하게 되었습니다.

 

악마에게 유혹을 받은 첫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창조주 하느님을 향한 신뢰가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었고, 자신의 자유를 남용함으로써 하느님의 계명에 불순종하였습니다. 이 죄로 인간은 하느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함과 동시에 하느님을 무시하였습니다. 악마의 유혹으로 인간은 하느님 없이,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서 하느님처럼 되고자 한 것입니다.

 

창세기는 이러한 첫 불순종의 비극적인 결과를 보여 줍니다. 아담과 하와는 원초적 거룩함의 은총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특권에 집착하시는 분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친근했던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죽음이 인류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첫 번째 범죄 이후로 이 세상에는 죄가 넘쳐흐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 역사 안에는 언제나 죄가 존재하게 되었고 보편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계시로 우리에게 알려진 이 사실은 우리 경험과 일치합니다. 과연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살펴볼 때, 자신이 악에 기울어져 있고 선하신 창조주에게서는 올 수 없는 여러 가지 죄악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은 가끔 하느님을 자신의 근원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궁극 목적을 향한 당연한 질서마저 파괴하고, 그와 동시에 자신과 이웃과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조화도 깨뜨렸습니다.”(「사목헌장」13항)

 

아담과 하와가 유혹자에게 굴복함으로써 지은 죄는 그들 개인의 죄이지만, 그 죄가 타락한 상태로 전달될 인간 본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곧 원초적인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한 인간 본성의 전달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본성이 손상을 입은 상태로 무지와 고통과 죽음과 악의 세력에 휘둘리며 죄로 기울게 됩니다. 죄악으로 기우는 이러한 경향을 ‘탐욕’이라고 부릅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지 않도록 막지 않으셨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성 대 레오 교황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언할 수 없는 은총은 마귀가 질투로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설교집』73,4)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이후에도 더 높은 목적을 향하도록 운명지어졌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더 큰 선을 이루어 내시기 위하여 악을 허락하십니다. 이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라고 말했으며, 부활 찬송가도 ‘오, 복된 탓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하고 노래합니다.”(『신학대전』3, q. 1, a. 3, ad 3)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죄에 대한 승리를 이루신 것이, 죄가 우리에게서 빼앗아 간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보존된다고 믿습니다. 비록 인간이 죄의 노예 상태에 떨어졌으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의 권세를 쳐부수시고 해방시키신 이 세상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변화되고 마침내 완성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