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4 13:23

가정교리 18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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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리 제 18 과 - 우리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난 건가요?

 

《“저는 분명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또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분의 세상 안에서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저만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제가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든, 경멸을 받든, 하느님은 저를 아시고 제 이름으로 저를 부르십니다.”(존 헨리 뉴먼 성인)》(『Youcat 프렌즈』p.41)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예레 1,5) 이렇게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생겨났습니다.

 

시편 저자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정녕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습니다.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 제가 남몰래 만들어질 때, 제가 땅 깊은 곳에서 짜여질 때, 제 뼈대는 당신께 감추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직 태아일 때 당신 두 눈이 보셨고, 이미 정해진 날 가운데 아직 하나도 시작하지 않았을 때, 당신 책에 그 모든 것이 쓰여졌습니다.”(시편 139,13-16)

 

초세기 교부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는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태중에서 우리를 만드시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하나하나 빚으시며 사람의 모든 일을 아시는(시편 33,15 참조) 분을 기억하지 않을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느님께서 비천하고 미천한 이들의 구조자, 약한 이들의 보호자,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하시는 분, 희망 없는 이들의 구원자(유딧 9,11 참조)이심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요한 복음 주해』13,167-168)

 

그래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의 사유의 산물입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사랑하시고 필요로 하시는 존재입니다.”(교황 즉위 미사 강론, 2005.4.24)

 

교황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는 분명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하느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아 나가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백성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사명은 제 삶의 일부도 아니고 제가 떼어 낼 수 있는 장식도 아닙니다. 또한 삶의 부록도 아니고 삶의 한 순간만도 아닙니다. 이는 저 자신을 없애지 않고서는 제 존재에서 떼어 낼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서 하나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기 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빛을 비추고, 복을 빌어 주고, 활기를 불어넣고, 일으켜 세우고,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이 사명으로 날인된 이들, 심지어 낙인찍힌 이들로 우리 자신을 여겨야 합니다.”(『복음의 기쁨』273항)

 

우리도 교황님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하나의 사명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여기 이 세상에 있는 이유입니다. 그 사명은 우리 각자가 찾아 나가야 하며, 다른 사람이 대신 찾아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