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오지 말고 손잡고 함께 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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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ME주말에서 알게 된 부부의 이야기이다. 남편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족을 돌보는 성실한 가장이었고, 아내는 살림도 열심히 하고 성당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는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두 분 사이는 왠지 냉랭하고 서로 대화도 거의 없었다. 두 분 다 아주 훌륭한 분들인데 부부 사이는 어쩌다 이렇게 멀어진 걸까?

평소 두 분이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물었더니 남편은 주로 TV를 보고 아내는 주로 2층 기도방에서 기도를 한다고 했다. 남편은 늘 혼자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하긴 하지만 때론 외롭다고 했고, 아내는 남편이 귀한 시간을 TV를 보며 허송세월하는 게 한심하다고 했다. 아내는 남편이 기도하지 않는 모습이 신앙인답지 않아 실망스럽지만 남편과 함께 기도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하느님과의 오롯한 만남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가 하느님만 사랑하지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며 서운해 했다. 남편 입장에서 아내가 기도를 너무 많이 한다고 드러내놓고 불만을 말할 수도 없고, 하느님보다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처지였을 것이다. 아내도 신앙인이라면서 기도는 하지 않고 TV앞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남편이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울 리 없다.

상황이 이해되면서 또 한편으론 아쉽게 느껴졌다. 아내는 남편이 직장에 있는 시간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남편이 집에 온 뒤에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는 없었을까? 아마도 남편과 함께 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을지 모른다. 어떤 사건 때문에, 또는 기대에 못 미쳐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에, 아니면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남편의 표정이나 말들 때문에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기도방으로 숨어들었을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맺어 주시고 부부로 부르셨을 때 우리에게 바라시는 게 무엇이었을까? 배우자를 혼자 외롭게 내버려 두면서 바치는 기도를 하느님이 흡족하게 생각하실까? 하느님은 ‘나에게 찾아와 기도하기 전에 먼저 너의 배우자부터 따뜻하게 안아주고 함께 내 앞에 오너라.’하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각자 여러 가지 봉사를 해왔다. 때로는 배우자가 성당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어 주말을 외롭게 보내게 될 때도 있지만 그 모든 일들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불만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고 위로가 되는 일임을 자주 체험한다. 때로 게으름에 빠져 주일미사에 빠지고 싶어질 때도 있지만, 성당에 가려고 깨끗이 씻고 옷을 차려입는 예로니모를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함께 성당에 가게 된다. 그런 날은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고 울림을 준다. 미사에 안 왔으면 귀한 이 말씀을 못 들었겠구나 싶어 나를 성당으로 이끌어준 예로니모가 고마워진다.

얼마 전 가족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예로니모가 “여보, 남은 휴가 기간에 개인 피정을 하고 싶어.”라고 말했는데, ‘아! 이 사람이 지금 많이 지치고 힘들구나. 하느님 앞에서 쉬면서 그분 말씀을 듣고 싶은가보다’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렸다. 바로 휴대폰으로 검색해서 다음날 개인 피정이 가능한 수도원을 찾아 예약을 해주었고, 예로니모는 2박3일 짧은 개인 피정을 다녀왔다. 하느님 안에서의 쉼과 대화는 예로니모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피정에서 하느님과 나눈 대화, 그 말씀을 좀 더 잘 알아듣기 위한 기도와 묵상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남은 휴가 일정 동안 밀린 집안일을 함께 하자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때 그에게 가장 필요한 일을 하도록 도와주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 우리를 부부로 맺어 주신 것은 혼자 오지 말고 손잡고 함께 오라는 부르심이다. 혼자 빨리 가기보다 좀 더디더라도 배우자와 함께 주님 앞으로 걸어가는 여정이 곧 부부성소다.




고유경 (헬레나·ME 한국협의회 총무 분과 대표)


가톨릭신문 2020-09-0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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