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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 (2020.4.19)

장유성당 주임신부 손태성 다미아노

 

사랑하는 라자로의 죽음을 아신 예수는 유다로 가자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가자고 하시는 예수를 말립니다.며칠 전 그들의 스승에게 하느님을 자처한다며 돌을 집어 던지려 했던 유다인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사도가 용감히 나섰습니다.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요한11,16)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날 밤, 당신을 여읜 후, 마음이 산란해질 제자들에게 유언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 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요한14.3-4)

스승의 말씀을 알 길 없지만, 그저 스승이 가는 길을 따르고자 열망하는 한 사도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요한14.5)

 

위에 언급한 사도는 바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토마스 사도입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요한20.25)

부활하신 예수를 뵈었다는 다른 제자들에게 토마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예수 부활을 믿지 않은 의심 많은 제자로 회자 되며 불명예의 사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을 각오로 스승의 길을 함께 가자며 다른 사도들을 이끌었던 사도였고, 스승이 가르치시는 진리의 말씀을 알아듣고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사도였습니다.

예수는 그런 토마스를 사랑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후, 여드레 뒤 다시 토마스 사도 앞에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요한20.27)

부활하신 예수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시든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직접 손으로 예수의 상처를 확인해 보았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그저 목숨처럼 사랑하였던 스승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수난 받고 죽으실 때, 도망가 버린 몹쓸 제자의 자책과 그리운 마음을 달래 주고 싶어 스승은 제자를 찾아오십니다.

그는 마지막인 듯 스승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다 쏟아내어 아무것도 남김없이 비워내신 스승은 비참한 종의 모습 그대로 그의 앞에 서 계십니다.

돈오’(頓悟) 의 순간이 그에게 찾아옵니다.

무엇이 길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생명인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토마스 사도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짧지만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토마스 사도는 육신을 모두 비워 내신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신성을 보았습니다.

스승 예수가 수없이 말씀하셨던 당신의 근원, 하느님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예수 안에 계신 하느님, 하느님 안에 계신 예수를 보았습니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 완전하신 모습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해결하시는 힘 센 분이시라는 고정관념은 깨어져야 합니다.

강한 자, 가진 자, 아는 자가 되는 것은 이 세상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그런 이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우리들 대부분이 또한 그런 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대 채워질 수 없고 완전해질 수 없고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은 하느님의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비워낼 것이 없고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고 더 이상 가난해 질 것이 없는, 아무 것도 없는 거기에

전부이신 하느님이 계십니다.

비웠지만 충만하고, 없지만 완전하고 슬프지만 행복한 그 역설의 진리를 토마스 사도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도들은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고 너희를 죽일 것이다. 세상이 너희를 박해할 것이다. 세상이 너희를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수없이 말씀하신 두려운 말씀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은 담대히 세상 속으로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를 선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오늘도 남김없이 비워내신 모습 그대로 나를 찾아오십니다. 그 모습 보이거든 보이는 대로 여러분도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하느님의 모습보다 더 좋은 것을 바라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짧지만 강렬한 이 고백이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날.

비로소 나는 부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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