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성주간 수요일
복음에서 유다가 대사제들에게 예수님을 고발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볼 때 유다의 행위는 이미 순수성을 상실하였습니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유다는 분명 반대급부를 바라고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을 위한다는 명목을 유다에게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노예 한 사람 목숨의 값어치 은전 서른 닢과 주님의 생명을 맞바꾼 유다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주님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유다는 적극적인 행동에 돌입합니다. 예수님의 '배반 예고'를 듣고 다른 제자들이 '주님'이라 부르며 자신들은 배반자가 아님을 떨리는 마음으로 변호하는 반면, 유다는 태연하게 예수님을 '스승님'이라 부릅니다. 이 '스승님'이라는 호칭이 예수님과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한때는 운명공동체였지만 이제는 특별한 관계가 아님을 표명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유다에게서 섬뜩함이 느껴집니다. 돌변한 한 인간의 무서움, 냉혹한 인간관계의 한 단면을 봅니다. 시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를 모욕하는 자가 원수였다면 차라리 견디기 쉬웠을 것을, 나를 업신여기는 자가 적이었다면 그를 비키기라도 했을 것을. 그러나 그것은 내 동료, 내 친구, 서로 가까이 지내던 벗, 성전에서 정답게 어울리던 네가 아니냐." (시편 55,12-14)
그러나 유다의 배신 행위를, 베드로가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을 부인했던 행위를 쉽게 단죄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충실히 주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해도, 언제 어느 때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아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하여 자신의 생명을 부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다를 거울삼아, 베드로 사도를 거울삼아 겸손하게 그리고 꾸준히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지금의 처지에 만족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2020년 4월 8일 성주간 화요일
율하성당 주임신부 최요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