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어요

2020 4 7일 성주간 화요일 미사 강론

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신부 이균태 안드레아

 

미사 지향

오늘 미사는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과 그 유가족들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하고자 한다. 홀로 죽음을 맞을수 밖에 없었던 환자들과 임종의 시간에 함께 할 수 없었던 유가족들, 그들의 아픔과 그들의 눈물을 하느님께서 몸소 닦아주시고, 어루 매만져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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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없다. 만약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중국사람들이 한국에 버젓이 들어오는 걸 막았더라면? 그럼에도 사람들은 « 만약에,,,, 만약에….. »하면서 가정하기를 좋아한다. 만약에 유다가 마음 먹고 있었던 일을 다른 제자들이 알고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 분명히 그들은 유다를 두들겨 패서라도 스승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 먹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다가 가졌던 기대에 반한 스승,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유다의 실망은 스승에 대한 증오와 배신으로 왜곡되어서 결국은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 넣기에 이른다. 유다가 바랬던 메시아는 힘있고, 능력 있고, 부유한 메시아였다. 잔뜩 기대했던 메시아가 힘없고, 무력하고, 나약한 빠스카 어린양으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내어 놓으려는 것을 눈치 빠른 유다는 간파했다. 예나 지금이나, 빠릿빠릿한 사람들이 돈을 맡는다. 인심 후한 사람은 맡아놓은 돈뿐만 아니라, 자기 돈까지도 써버린다. 예수의 12제자들 중에 돈관리를 맡은 사람은 유다였다.

복음은 이중적이고, 양면적인 유다를 고발한다. 유다의 악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그의 비참한 말로까지도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런데, 왜 복음은 그렇게까지 유독 유다의 말과 행동들을 다른 제자들보다도 더 상세하게 보도할까 ? 유다의 배신이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가장 직접적인 이유였음을 알리기 위함이었을까 ? 그래서 그리스도교가 퍼지는 곳마다 유다라면 치를 떨게 하고, 유다를 영원한 증오와 적개심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일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이유 때문에 복음이 유다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 더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지키며, 사랑하고, 희망하며, 생명을 돌보고, 자유를 누리라고 가르치지만, 증오나 적개심은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유다의 배신과 제자들의 배반을 복음이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는 것은 그 제자들의 모습이 비단 제자들만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그러한 배신과 배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유다가 빵 한 조각을 받자마자,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오늘 복음은 전한다. 이어서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는데, 때는 밤이었다라고 전한다. 해가 저물어서 밤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예수를 떠나고, 예수를 배신한 유다에게는 또 다른 밤이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사람이 진리를 떠나고, 선이 아닌 악을 행하게 될 때, 거기에는 언제나 밤이 존재한다. 사람이 선한 소명에 응하기보다 악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거기에는 언제나 밤이 있다.

기대하던 사람에 대한 실망, 사랑하던 사람에 대한 증오는 살인의 충동까지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충동을 느끼는 것과 실제로 그런 일을 행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그리고 그러한 충동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이내 그 충동이 잘못된 것임을, 사탄의 유혹임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유혹 중에 있는 것은 어두운 밤 중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밤은 결코 자기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밤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두운 밤 중에도 하느님이, 용서하시는 하느님이 계심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다만 스승을 배신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도 스승을 배신했다. 베드로도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 베드로도 어두운 밤의 한중간에 있었다. 이에 대한 몫으로 유다는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  베드로는 예수의 슬픈 얼굴을 보고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유다의 죄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할 만큼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이고, 베드로의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라는 말을 복음이 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계속해서 등을 돌리고 산다면, 우리는 언제나 죽음의 밤에 휘둘리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어두운 밤 속에 머무를 때가 있다. 그럴 때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 유다일까 ? 베드로일까 ? 나는 유다와 닮아 있는가 ? 베드로와 닮아 있는가 ? 바로 오늘 복음은 우리들에게 이것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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