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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일2020..29)

장유성당 주임신부 손태성 다미아노
 

전 세계적으로 5초에 1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우리나라에서 한 해 약 25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들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의 수치에는 온 세상이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며 사망자들을 애도합니다. 이 죽음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고 죽을 수도 있음을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인구12만의 이탈리아의 소도시 베르가모의 화장터는 24시간 돌아가고 교회에까지 시신을 안치한다고 하니 중세 유럽의 페스트(흑사병)’의 재앙이 재현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죽음이 바로 내 곁에 와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고 삶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어느 묘지 입구에 새겨진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 가 바로 우리의 귓전에 울려 옵니다.

라는 존재가 죽는다는 것이 두렵고 에게 고통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이토록 집착하는 는 무엇입니까?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 안에서 는 무엇인지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기 전, 나는 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태어나고, 이렇게 살고 죽음을 향해 갑니다.

이제 나는 시신이 되어 땅에 누워 있습니다.

피부, , 머리카락, 창자, 심장, 간 모든 몸의 기능이 멈추고

시신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부풀어 오르고 썩기 시작합니다.

검푸르게 변한 시신은 이제 뼈만 남고, 분해되어 한 줌 티끌이 되어 흩어집니다.

상상하기 두려운 이 죽음을 직시하는 일은 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의 육체는 본래 내 것이 아닙니다. 수시로 변하는 나의 감정과 생각들, 내가 자랑하는 지식 또한 내가 아닙니다. ‘라는 실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소멸할 것들에 집착하며 참 생명을 살아가지 못하는 자아라는 껍데기를 이제는 벗어버립시다. 고집멸도(苦集滅道) -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집착 때문이요, 집착을 멸하면 깨달음에 이른다는 불교의 교리도 이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면 실체없는 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실체 없는 를 모두 걷어낸 곳에서, 살아 활동하시는 영원한 하느님의 영이 바로 참된 나입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 영은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영을 연기 같은 존재, 인격이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그분을 내 안에 모시기를 열망하지 않으며 나를 열어 드리지 않습니다. 나의 썩을 몸 안에 하느님의 영을 모시지 않는다면 나는 살아서도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빈 껍데기로 살아갈 것입니다.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은 신이다.”

오늘 복음인 라자로의 소생 바로 앞에 나오는 이 말씀(요한10.34-35)은 우리의 근원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나를 똑같은 하느님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함이었고 하느님이 죽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이 세상과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죽게 하기 위함이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단지 신으로만 존재하시려면,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외아드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영웅적인 신으로써 이 세상을 얼마든지 구원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실체 없는 육신의 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영의 씨앗을 우리 안에 심어 주셨고 우리는 당신의 자녀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 안에서 잘 커지시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이 세상과 모든 피조물로부터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라자로의 썩은 몸을 다시 살리시면서 우리가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임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일회성의 기적으로써 라자로의 소생이라면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영에서 등을 돌릴 때 우리는 바로 죽을 몸 안에서 소멸할 것을 부여잡고 돌무덤의 어둠에 갇혀서,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것과 다름 없는 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죄를 짓고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지만, 우리 안에 계신 당신의 영은 이리 나와라하며 죽은 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무덤에서 생명으로 불러주고 계십니다.

이제 썩을 육신이 실체 없는 임을 아는 우리는, 더 이상 나의 몸뚱아리 나의 가족, 내가 가진 것, 삶과 죽음에 대한 집착들에서 벗어나 참 생명인 하느님의 영으로 영원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것은 예수였지만 그가 무덤에서 나오도록 돌을 치워주고, 그를 감싸고 있던 천을 풀어주어 다시 걷게 한 것은 함께 있던 이들이었습니다.

나를 살리신 예수를 도와 나는 세상이 만든 무덤 속에 갇힌 이들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손을 잡고 세상 속에 함께 걸어 나가야 합니다.

죽은 라자로와 함께 당신이 나를 살리신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코로나19의 두려움 속에서도 용감하고 너그러운 헌신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의사, 간호사, 간병인, 운송인, 자원봉사자, 경찰 등) 세상 속의 라자로에게 기꺼이 다가가 그들을 죽음에서 살려내고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심 대신 공동책임의 씨를 뿌리려 애쓰며 세상에 희망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죽음 대신 세상 속에 살아 활동하시는 하느님과 더욱 일치하고 사람들과 더욱 연대하며 세상은 하나가 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영의 사람들은 영원이신 하느님의 시.공간 안에서 이승 너머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고통받는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에 대하여(3.28)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황폐한 어둠이 무겁게 내려 앉아 있는 그 곳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기적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는 우리와 함께 비를 맞고 계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고통 받는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전대사)을 주셨습니다. 이 날 마르코 복음 435절에서 41절의 말씀이 봉독 되었습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탄 배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이 배에 가득 차게 되자,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예수를 제자들이 깨우며 살려달라고 합니다. 예수는 바람을 멎게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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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종의 말씀을 옮겨 보겠습니다.

지금 온 인류는 같은 배를 탄 연약하고 길 잃은 사람들입니다. 한 목소리로 우리는 근심에 싸여 죽게 되었구나.” 하고 말하며 혼자서는 이겨나갈 수 없다는 것,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복음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제자들은 긴장하며 절망하지만 그분은 대혼돈에도 불구하고 고요히 아버지를 신뢰하며 주무십니다.

예수님의 신뢰와 반대되는 제자들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하지 않으십니까?” “상관없으십니까?”

제자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흔들리셨을 것입니다. 그분보다 더 우리를 걱정하는 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부르자마자 신뢰를 잃은 제자들을 살려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당신의 말씀은 저희를 건드리고 저희 모두에게 다가옵니다. 저희는 강하고 마치 불가능이 없다는 듯, 전속력으로 달려왔습니다. 이익을 탐하며 당신께서 경고하실 때 멈추지 않았고 전쟁과 불의 앞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중병이 든 지구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병든 세상에서 언제나 건강할 거라 생각하며 무정하게 달려왔습니다.

이제 파도치는 바다에서 당신께 간절히 청합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호소하시고 야단치십시오. 당신이 계시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가서 의지하도록 해 주십시오. 이 사순시기에 회개 하여라” “온 마음을 다해 나에게 돌아 오너라.”(요엘2.12) 라는 당신의 긴급한 호소가 울려 퍼집니다. 이 시험의 시간을 선택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도록 저희를 부르십시오. 당신의 심판의 시간이 아니라 저희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지나가는지 선택하고,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갈라내는 판단의 시간이 되게 해 주십시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믿음의 시작은 우리가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배에 주님을 모십시다. 우리의 두려움을 주님께 넘겨 드려 그분께서 이기시게 합시다. 하느님의 힘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추악한 일조차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분께서는 돌풍 속에서 고요를 가져다 주십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생명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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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장유성당 교우 여러분,

성당 마당의 왕 벚꽃나무에 꽃이 만개하였습니다.

꽃이 다 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사진 올립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교우 모두를 축복하시고 길이 머무소서. 아멘.벚꽃사진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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