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사순 4주간 월요일
요한 복음 4,49-50은 갈릴래아 가나에서의 첫 번째 기적(2,1 ~11)과 연관 지어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게 된 왕실 관리는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간청했던 왕실 관리의 마음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어떤 치유의 행위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고 왕실 관리가 떠나 갔다는 사실입니다.
왕실 관리는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던 겁니다. 왕실 관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한 단계 더 높은 믿음의 차원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배반한 것처럼 토마 역시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해 못 자국을 보고야 믿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토마를 아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친히 토마에게 당신의 못 자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보고야 믿겠다는 토마의 불신앙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왕실 관리의 믿음이 대조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요즘 성찬의 전례가 빠진 말씀 안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미사의 은총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공동체 모두가 함께했던 그 시간이 얼마나 은혜로운 시간이었는지를 느끼며 말씀 안에서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보기에 그냥 문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왕실 관리처럼 그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다면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 생활 중에 분명 살아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 숨 쉴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살아있는 말씀에 생기를 불어넣고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임을 기억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간 열심히 살아가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2020년 3월 23일
율하성당 주임 신부 최요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