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묵상]
2019년 12월 8일 (일) [자]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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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이사 11,1-10) 제2독서(로마 15,4-9) 복음(마태 3,1-2)

도시 광야의 선구자 자색 촛불을 하나 더 밝히며 대림 제2주일을 맞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정의와 공정으로 다스리는 메시아의 시대가 다가옴을 예고합니다. 시대의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 3,2- 메시아의 재림을 깨어 기다리는 이 은혜로운 시기에 굽은 길을 곧게 펴는 마음으로 회심합니다. 한국천주교회는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과 사회교리주간으로 지냅니다. 오늘날 물질문명과 돈 중심의 사회 속에서 ‘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존엄성은 무시되고 사회 경제 질서는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듭니다. 인간을 존중하고 정의를 실천하여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새 복음화’의 길은 사회교리의 실천에 달려있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죄에 대하여 개인의 책임(‘내 탓이오!’)을 강조해왔으나 최근 구조적인 불의로 공동선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시대마다 도전적인 사회 이슈가 제기될 때 역대 교황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선포해왔습니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바티칸의 대표적 사회교리 문헌인 <새로운 사태>(1891), <사십 주년>(1931), <어머니요 스승>(1961), <지상의 평화>(1963), <민족들의 발전>(1967), <생명의 복음>(1995), <복음의 기쁨>(2013) 등은 사랑과 정의의 열매를 맺어 평화를 이루는 생명의 길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이사 11,1-10)에서 이사야 예언자(기원전 8세기)는 다윗 왕권의 이상을 구현할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예고합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예루살렘 출신 다윗은 필리스티아인과 전쟁에서 골리앗을 이긴 영웅(1사무엘 17,12 이하)이고, 40년간 통일왕국(1역대 29,27)을 다스린 통치자였으며, 시편에서 보듯이 수금 실력이 뛰어나 성전의 거룩한 전례를 세운 왕의 모델입니다. 오시는 ‘새 다윗’(이사 11,1)은 성령 칠은을 입어 주관대로 판단하지 않는 정의와 신의의 심판자입니다. 늑대, 표범, 사자 같은 야생동물이 염소, 양, 소 같은 가축과 함께 지내고, 어린이가 독사굴에 손을 디밀어도 물지 않는 세상은 천국의 목가적인 모습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메시아의 시대는 보편적인 정의와 평화가 꽃피는 세상 (화답송, 시편 72)이라는 극적 묘사입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을 알고 모여든 성전은 주님께 영광입니다.

제2독서(로마 15,4-9)에서 바오로 사도는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내를 배우고 위로를 받아 희망을 간직하게 됨을 밝힙니다. 주님의 뜻에 일치하여 한마음 한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함은 경직된 사고와 획일적인 표현이기보다는 타인의 생각과 의견도 배려하여 조화를 이룸에 있습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인 사랑의 일치로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하느님의 영광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만민에게 은총의 선물이 되어 그들도 주님을 모시고 기쁘게 찬미하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예언자가 말한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이사 40,3; 말라3,1)이 유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마태 3,2-3)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광야는 고적한 불모지입니다. 반면에 별이 빛나는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하늘(하느님)나라는 하느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는 유다 관습에 비추어 나자렛에 오신 메시아(마태 2,23)이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사는 길은 회개와 쇄신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회개는 잘못을 고백하고 성사를 보는 예식보다는 하느님을 부인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나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방향전환을 하는 내적 참회가 핵심입니다. 스마트 시대에 주님이 오실 길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앞에서 드러낸 교만과 분노의 산과 언덕은 낮추고, 분열과 절망의 골짜기는 메우며, 얽히고설킨 매듭을 풀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마태 3,3; 이사 40,3-5)을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요한은 말로만 회개를 외친 것이 아닙니다. 낙타털옷과 가죽 띠를 두른 그의 복장과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지내는 광야의 삶이 표양입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강물로 세례를 받는 백성들 가운데 율법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에게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란 모욕적인 언사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질책(마태 3,7-8)합니다. 당시 사회의 갈라진 모습, 지도자들의 위선,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이 짐작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지 못한 나무는 ‘다가올 진노’에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집니다. ‘다가올 진노’(마태 3,7)는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는 이에 대한 심판을 두고 한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선민의식은 버리고,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새 삶에 도전합니다. 오시는 주님은 요한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으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며, 심판의 타작마당에서 알곡은 곳간에 쭉정이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동안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산타가 되어 가난한 이웃들에게 자선의 선물을 나누는 전통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내면의 하느님을 만나 우정을 나누는 사랑받는 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부끄러운 삶을 회심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신앙인이 요한의 모습을 닮은 도시 광야의 선구자가 아닐는지요? 대림 촛불 앞에서 내면을 살피고, 감사할 줄 모르고 나 중심의 삶을 산 잘못을 참회하면서 마음에 오시는 주님을 따뜻이 맞을 빈방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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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간 전례]

2019년12월 9일(월) [백]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성모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신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믿음은 초대 교회 때부터 생겨났다. 이러한 믿음은 여러 차례의 성모님 발현으로 더욱 깊어졌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우리나라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수호자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로 정해 줄 것을 청하였다. 이 청원이 받아들여져 한국 천주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한국 교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

[복음묵상] 루카 1,26-38 오늘 교회는 주님 사랑의 위대함과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신 놀라운 일을 묵상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되는 소명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쉬운 일도, 예상된 일도 아니었습니다. 천사가 하느님의 인사말을 전하였을 때 그녀는 몹시 놀라 당황하였습니다. 세상의 악은 하느님을 멀리하는 마음에서 생깁니다. 그녀는 천사의 소식에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당황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그녀를 위로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이 소식은 아직 요셉과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은 그녀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러자 천사는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하고 덧붙이며 설명합니다. 이때 마리아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요.”라고 하면 평소처럼 평온한 생활을 이어 가겠지만, “예.”라고 하면 그녀의 모든 삶은 복잡해질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능력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순종의 자세는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에게 사랑받는 첫 여인인 그녀는 천사가 그녀에게 전한 부르심에 “예.”라고 대답하는 첫 여인이기도 합니다. 오늘 마리아는 우리 앞에, 우리 마음의 눈앞에 있습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2019년 12월 10일 (화) [자]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18,12-14 오늘 독서에서 예언자는 백성이 놓인 유배 상황에 체념하거나 낙담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믿는 이들은 나약하고 불확실한 삶을 성찰하면서, 도와주러 오시는 주님께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광야에 길을 곧게 내어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문까지 오시게 하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라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는 모든 이가 위로의 말씀을 듣게 말해야 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주님께서는 권능을 떨치며 부드럽게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시는” 부드러움으로 가득 찬 목자처럼 오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내적 친밀감의 표현인 당신 마음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드러내십니다. 목자의 표상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예수님께서는 강생의 비밀, 곧 작은 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자비를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잃어버린 양들에게 부드럽게 행동하실 뿐만 아니라 양들을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어 주시는 주님께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요한 10,11-18 참조).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2019년 12월 11일 (수) [자] 대림 제2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11,28-30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위대함과 능력을 강조합니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자만은 눈을 멀게 하여 인간의 나약함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예언자는 각자의 삶과 온 세상에 드러나는 하느님 사랑의 작품을 보도록 우리의 눈을 들어 올리라고 말합니다. 이런 시선은 스스로 안전과 위로를 줄 수 있다고 여기는 자기 숭배에 빠지지 않게 해 줍니다. 우리 자신의 첫 ‘우상’은 곧 ‘나’입니다. 나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고 여기고는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사람은 도움과 위로, 지지와 힘을 받습니다. 젊은이나 어른 모두 오로지 하느님만을 신뢰하라고 권고합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보루이시고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삶의 수고 안에서 절망하지 않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그분 현존에 맞게 걸어가는 새로운 힘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보여 줍니다. 그분의 권능과 능력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단순하게 제시되십니다. 하느님 자비의 최고 표현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라셨고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온전히 함께 나누기를 바라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당신 친밀감으로 들어 높이시려는 예수님의 계획은 무한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2019년 12월 12일 (목) [자]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마태오 11,11-15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잊고 오히려 두려움과 실망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요즘 국제화 시대에서는 세상이 너무 크게 보여 두려움과 불신의 감정에 더욱 쉽게 젖어 듭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언자에게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로운 현존을 깨닫게 해 줍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보루이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위로이시며 사로잡힌 이들의 해방이십니다.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도와주러 오십니다. 예언자는 바빌론 유배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새로운 탈출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는 첫 번째 해방보다 더 심오한 해방이 될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다음 광야를 걸어갈 때 이스라엘 백성이 바위에서 솟는 샘물로 갈증을 없앴다면, 이제 주님께서는 광야 전체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이렇게 당신 백성을 위하여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 사랑은, 우리와 함께 지내시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셨을 뿐 아니라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 목숨을 내주셨던 예수님을 통하여 그 정점에 이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보아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2천 년 전에 하신 약속은 “세상 끝 날까지”(마태 28,20)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지내는 것은 사랑에 빠진 이들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것,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것, 이보다 더 설레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2019년 12월 13일 (금) [홍]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루치아 성녀는 로마 박해 시대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루치아의 순교 사실을 전하는 5세기의 기록에서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일찍 세례를 받은 그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딸의 신변을 염려한 어머니의 주선으로 귀족 청년과 약혼하였다. 그러나 동정을 결심하고 있던 루치아는 한사코 혼사를 거절하였다. 이에 격분한 약혼자의 고발에 따라 그녀는 결국 300년 무렵에 순교하였다. 루치아(Lucia)라는 이름은 ‘빛’ 또는 ‘광명’을 뜻하는 라틴 말에서 유래되었다.

[복음묵상] 마태오 11,16-19 오늘 독서에서 예언자는 백성에게,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고 하면서 주님을 쉽게 멀리하는 세상 안에 주님의 현존을 상기시킵니다. 주님을 멀리하는 삶은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고, 오히려 슬프고 폭력적인 삶으로 변합니다. 우리 시선을 들어 올려 우리를 위하시는 주님과 그분 사랑을 깨닫는 것이 절박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활 방식과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주님과 그분 사랑을 잊고, 하느님 현존에 대한 의식 없이 살아갈 때 의미 없는 암울한 삶으로 끌려가기 쉽습니다. 주님만이 평화의 길로 우리의 발걸음을 올바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백성이 계속해서 당신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게 하십니다.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오시든 주님을 맞이하려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시는 주님을 만나고 맞이하는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현존을 통하여 우리를 자신 밖으로 나가게 하시어 당신 아버지와 관계를 맺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어쩌면 혼인 잔치에서 ‘기쁘지 않다.’라고 말하고, 장례식에서도 ‘슬프지 않다.’라고 말하는 장터에 앉아 있는 변덕스러운 아이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과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언제나 모든 것을 거부하려는 비판적인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 계명에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모든 상황에서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좋은 것만을 바라보게 하는 열려 있는 태도와 인자로운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마음에는 “평화가 강물처럼,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릴 것입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2019년 12월 14일 (토) [백]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1542년 스페인 아빌라의 폰티베로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을 체험한 그는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하다가 사제가 되었다. 이후 요한은 ‘아빌라의 성녀’로 잘 알려진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영성 생활의 스승 역할을 하였다. 1591년 세상을 떠난 그는 1726년에 시성되었고, 1926년에는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교회의 위대한 신비가인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등은 영성 신학의 고전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복음묵상] 마태오 17,10-13 늘 독서에서는 엘리야가 칭찬을 받습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바알 신을 믿는 예언자들은 백성에게 물질적인 번영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예언자인 엘리야는 백성이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고 신앙으로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백성은 마음이 완고해져서 하느님의 뜻과 거리가 먼 행동을 고집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립니다.” 가뭄은 하느님 진노의 표징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성경은 다른 이유, 곧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기” 위함이라고 제시합니다. 여기서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회개와 사랑을 되찾으려는 것입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엘리야의 목소리는 큰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주님께서 우리 귀에 새로 울려 퍼지게 해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변모하신 다음 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께서 엘리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시대의 전통은 메시아 이전에 엘리야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성경을 잘 알고 있기에 주님께 맞서려는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 성경을 인용하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두고 그가 이미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하고 대답하십니다. 율법 학자들은 마음이 완고하여 마음의 문이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려 있다면 세례자 요한이 전한 회개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엘리야가 돌아왔음을 깨달으며, 곧 요한이 새로운 엘리야였음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갑짝스러운 한파가 겨울이 왔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겨울엔 추위가 있어야 한다는 분도 있고 그래도 따뜻한 날이 좋다는 분도 있습니다. 한겨울이 있으면 따뜻한 봄 날이 머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올 한해의 마무리인 이 때 기쁨과 슬픔과 어려움이 술술 풀리시고 소원한 이웃과 행복한 가족 속에서 희망찬 새해를 기대합니다.
-Berar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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