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은 성 크리산도, 성 제오로지오 축일입니다.
우리 양정성당에는 이상천(크리산도), 17교우회의 김훈(제오로지오)님이 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성 크리산투스(또는 크리산토)와 성녀 다리아(Daria)는 분명 초기 교회의 순교자임은 분명하나 그들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6/7세기의 전승에 따르면, 성 크리산투스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부유한 청년으로 로마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에 입문했다. 그런데 그의 부친이 그를 그리스도인들과 떼어놓기 위해 미네르바(Minerva) 신전의 여사제인 성녀 다리아를 동원해 감언이설로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성 크리산투스가 성녀 다리아를 개종시킨 후 둘은 동정 결혼을 했다. 그들은 많은 외교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는데, 그중에는 군인들이 특히 많았다. 이때 개종했다가 순교한 군인 중에는 사령관이었던 호민관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12월 3일)와 62명의 군인도 있었다.
성 크리산투스와 성녀 다리아는 그들의 눈부신 활동 때문에 체포되어 누메리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의 모래밭에 산 채로 묻혔다. 그들의 무덤에서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자 황제는 그 입구를 봉쇄하여 그들에 대한 공경을 금지했다고 전해온다. 그들의 무덤은 고트족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539년에 복원되었고, 844년 그들의 유해가 프륌(Prum)으로 옮겨지고 다시 뮌스터라이펠(Munsterreifel)fh 이장되어 지금까지 공경을 받고 있다.
프랑스 페리괴(Perigueux) 지방의 사도이자 첫 번째 선교사로 알려진 성 프론토(Pronto)는 유다 지파에 속하며 고대 소아시아 중남부 지방인 리카오니아(Lycaonia) 태생으로 전해온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사도 베드로(Petrus)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72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베드로와 함께 안키오키아(Antiochia)와 로마(Roma)로 갔고, 여기서 그는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라는 사제와 함께 프랑스 지방 선교 길에 나섰다고 한다. 성 프론토는 페리괴에 본부를 두었으며 그곳의 첫 번째 주교였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후에 르퓌(Le Puy)의 주교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선교활동은 성공적이었다.
성 크리산투스(또는 크리산토)와 성녀 다리아(Daria)는 분명 초기 교회의 순교자임은 분명하나 그들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6/7세기의 전승에 따르면, 성 크리산투스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부유한 청년으로 로마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에 입문했다. 그런데 그의 부친이 그를 그리스도인들과 떼어놓기 위해 미네르바(Minerva) 신전의 여사제인 성녀 다리아를 동원해 감언이설로 달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히려 성 크리산투스가 성녀 다리아를 개종시킨 후 둘은 동정 결혼을 했다. 그들은 많은 외교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는데, 그중에는 군인들이 특히 많았다. 이때 개종했다가 순교한 군인 중에는 사령관이었던 호민관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12월 3일)와 62명의 군인도 있었다.
성 크리산투스와 성녀 다리아는 그들의 눈부신 활동 때문에 체포되어 누메리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의 모래밭에 산 채로 묻혔다. 그들의 무덤에서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자 황제는 그 입구를 봉쇄하여 그들에 대한 공경을 금지했다고 전해온다. 그들의 무덤은 고트족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539년에 복원되었고, 844년 그들의 유해가 프륌(Prum)으로 옮겨지고 다시 뮌스터라이펠(Munsterreifel)fh 이장되어 지금까지 공경을 받고 있다.

프랑스 페리괴(Perigueux) 지방의 사도이자 첫 번째 선교사로 알려진 성 프론토(Pronto)는 유다 지파에 속하며 고대 소아시아 중남부 지방인 리카오니아(Lycaonia) 태생으로 전해온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사도 베드로(Petrus)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72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베드로와 함께 안키오키아(Antiochia)와 로마(Roma)로 갔고, 여기서 그는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라는 사제와 함께 프랑스 지방 선교 길에 나섰다고 한다. 성 프론토는 페리괴에 본부를 두었으며 그곳의 첫 번째 주교였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후에 르퓌(Le Puy)의 주교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선교활동은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