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피 흘림 없이 태어나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피 흘리는 것이 부모이고 그 피 흘림 덕분으로 태어나는 것이 자녀입니다. 무성 생식을 하는 아메바와 같은 동물도 자신의 살점을 떼어 줌으로써 자녀를 탄생시킵니다. 피는 곧 생명입니다. 나의 피를 흘려주어야 나와 같은 생명체가 탄생합니다.하느님께서는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담도 하와의 탄생을 위하여 옆구리가 찢어져 피를 흘려야만 하였습니다.교회가 탄생하기 위해서도 피 흘림이 필요하였습니다. 하느님 아드님의 십자가 죽음이 요구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피와 물’을 쏟으셨습니다(요한 19,34 참조). 하느님께서는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듯이, 예수님의 피와 물로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교회는 세례-견진-성체의 입문 성사로 탄생한 하느님의 백성이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솟아나온 피와 물이 곧 ‘성사’이기 때문입니다(전례 헌장 5항 참조).그러니 교회가 탄생한 자리가 ‘십자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누군가의 죽음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또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져 아담과 한 몸이 되었듯이, 교회도 그리스도의 피와 물로 만들어져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룹니다. 그 덕분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내 등에 십자가가 없다면 우리는 하느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새로운 하느님 자녀를 탄생시키는 역할에 참여할 때 진정한 십자가 현양이 이루어집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