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연중 제22주일 <‘나뉨이 아니라 나눔입니다>

(2019. 9.1 집회 3,17-18.20.28-29; 히브 12,18-19.22-24; 루카 14,1.7-14)

 

오늘 복음은 어느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은

주님께서 음식을 잡수실 때 일어난 일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날도 어김없이

주님의 행동을 지켜보는사람들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사실 주님의 흠을 잡으려고 곁눈질하는 못된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그들의 눈초리가 마음에 걸리고 언짢은 이유는

그 자리가 식사 자리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엿보며 흠을 잡으려는 눈길이야말로

주님께 눈칫밥을 드시게 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날 주님께서 체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진짜 속상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계속 읽으니,

그날 체증환자는 앞에 놓인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마음속에 갖은 음모를 품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으리라 싶습니다.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보며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라고 콕 집어 단언하시니,

입맛이 싹 달아났을 듯합니다.

편견으로 굳어진 속마음에 시빗거리를 찾으려는 꼼수가 그득 찼으니,

먹은들 제대로 소화될 리가 만무하다 싶은 겁니다.

 

세상은 늘 높은 자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찌하면 더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인지를 모색하는 것이

세상의 최대 관심사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못난 인간과 하나 되기 위해서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습니다.

하느님과 나뉘어

그분 뜻과 딴판으로 살고 있는 세상의 비참함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깊은 어둠 속에 던져져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인생을 가엾이 여기셨습니다.

마침내 하느님과 원수가 되어버린 인간들을

하느님과 하나로 묶어 주는 평화의 끈이 되셨습니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2000년이 흘러

복음의 길을 걷는 가톨릭신자가 10억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국경과 사상과 계층으로 더 뚜렷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이 갈라지고 나뉘어져

싸움과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세상은 움켜 쥔 채 나누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쌓은 벽으로

점점 분열되고 있습니다.

끼리끼리 놀고

통하는 사람끼리의 안녕을 위한 보안의 벽이 세상을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나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원리는 나눔입니다.

주님처럼 기득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마음만이

나뉘어짐으로 인해서 생긴 삶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뉨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행태입니다.

나눔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가장 아름다운 덕목입니다.

주님은 나뉨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나누셨습니다.

생명까지 나누셨습니다.

그 주님의 나눔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되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누어야 할 차례입니다.

분열은 정치력으로 극복되지 않습니다.

경제력으로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낮아져 사랑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행위만이

서로 사랑하는 일치의 삶을 살게 합니다.

지금 세상을 앓게하는

나뉨을 치유하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나눔뿐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진정한 나눔이 이루어질 때에

흩어지고 분열되는 어리석음을 벗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 주님 말씀의 심지를 뽑습니다.

높고 낮은 것으로 분류하여 담을 쌓고

크고 작은 것으로 차별하고

판단하며 나누어진 세상을 깨우는 음성을 듣습니다.

이분화 된 세상에 들려주는 일치의 방법을 배웁니다.

주면 다시 받아야 하고,

또 먼저 받은 후에야

다시 주겠다는 계산에 밝은 세상을 역행하라는 명령을 캡니다.

하느님께 기억되고 상급을 받을 삶은

계산하지 않고 모두 내어주는 것임을 명심하라는 권고를 새깁니다.

주님께서는 겸손이

세상의 나뉨을 회복시킬 수 있는 묘약이라고 밝히십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주님의 요구일지라도 실천하고 볼 일입니다.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긴가 민가 따질 여유가 없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신앙은

복음말씀에 체한 소화불량 환자에 불과합니다.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세상과 차별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말씀이신 주님을 망신스럽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들려주신 간단한 방법만 살아내도

복음의 삶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

우리의 보상은

땅이 아닌 하늘에 쌓여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힘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주님의 힘인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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