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의 도시 예루살렘 가까이 계시는 예수님에게 사람이 묻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오늘 복음에 사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이 질문입니다. 하느님께 지어 바친 성전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에게 자리한 하늘나라의 존재는 그 때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이런 시각은 그들에게 높기만 한 하느님의 권위를 말해주는 시각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느님의 '심판'이 강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는 두가지 기준, 곧 '사랑'과 '심판'은 분명 하느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이지만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심판의 이미지가 더욱 강합니다. 물론 우리는 '사랑'이란 단어를 수도 없이 사용하지만 정작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설 때 우리는 고개 숙인 자녀, 곧 무엇인가 잘못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는데 익숙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지만 정작 우리가 하느님을 배우는 시간과 마주할 시간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극단적인 상황에 있을 것이라는 공포를 어릴 때부터 배웠습니다. 무서운 마귀와 불 구덩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그것을 심판하시고 정하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늘 죄인이란 의식에 지배당한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 성전 가까이에 살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험'인듯 말하는 이에게 예수님은 그의 말로 대답해주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그렇다면 하늘나라는 들어갈 수도 없는 곳이 되어 버립니다. 모두가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 곳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그 심판의 주님이 그만큼 엄하고 무섭고 냉정하다는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느님을 생각한다면 그 곳은 결국 모두가 바라지만 가능하지 않은 곳이 되고 맙니다.
사람들은 그 날 스스로 그 곳에 들어가려 하지 않으면서도 주님께 불만을 터뜨리게 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