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복음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시면서, 먼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라는 계명을 언급하십니다. 그런데 구약 어디를 보아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있지만, 원수를 미워하라는 계명이 명시적으로 규정된 곳은 없습니다.
그 계명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이웃과 이웃이 아닌 사람들을 명확히 구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웃에는 한 민족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 땅에 거주하고 있는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범주에 포함되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의 적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땅은 하느님께서 선택된 민족에게 마련해 주신 것이었기에, 그 땅을 공격하거나 지배하려고 하는 모든 이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하느님께 대적하는 원수들이었습니다. 그것이 곧 원수를 미워하라는 계명으로 이해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인들을 통하여 전해져야 하는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켜져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를 증오하거나 혐오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수 사랑은 그리스도교 정신의 근본적인 핵심이면서, 가장 성숙한 열매입니다.
내가 비록 가까운 사람도 용서하지 못하여 힘들어하고 있을지언정, 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에 가까이 가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