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며 동시에 61번째 맞이하는 성소 주일입니다. 성소 주일은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번 성소 주일 담화문을 통하여 우리는 희망의 순례자로서 성년(2025년)을 향하여 함께 나아가자고 말씀하시면서, 성령께서 베푸시는 다양한 선물 가운데에서 자신의 성소와 그 자리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꿈을 알리는 전령이자 증인이 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과 마음의 대화를 나누고 희망의 순례자가 될 수 있는 우리의 역량이 더없는 축복임을 재발견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희망이 자라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저는 기도가 희망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편에 희망이 존재하지만, 그 희망에 이르는 문은 나의 기도로 여는 것입니다”
성소(聖召), 곧 하느님의 부르심이기에 우리들은 그 부르심을 거룩한 부르심, 성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생명을 갖고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이 성소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세상에서 살다가 다시 당신께로 되돌아오라는 주님의 뜻이 우리의 생명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성소 즉 거룩한 부르심의 교훈은 이럴 것입니다.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이 되는지 생각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소 주일을 제정한 것은 성소의 근본적인 힘이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알리고 묵상하자는데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에서처럼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름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며, 바로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께로 돌아가는 삶을 완성하는 것이 곧 성소(거룩한 부르심)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와서 나를 따라라”(마르 10,21).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뜻을 그분의 뜻에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그분에게 주도권을 드리고,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곧 가정과 일터와 개인적 관심사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과 관련해서도 그분께 첫째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 자체를 그분께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매우 친밀하게 살며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친교를 이루고 결국 우리의 형제자매와 친교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로 비유하시며 우리들을 양이라고 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양은 눈이 매우 나쁘다고 합니다. 후각도 별로 발달하지 못하고 위험한 상황을 빨리 대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마땅한 수단도 없는 동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풀밭으로 데려가고 또 들짐승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목자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탓인지 양들은 귀가 밝아서 자신을 돌보는 목자의 소리를 잘 식별한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양 우리에 여러 양 떼가 섞여 있어도 목자들이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특별한 소리를 내면 그 목자가 돌보는 양들만 그 소리를 알아듣고 양 우리에서 나옵니다. 목자들은 양을 밖으로 불러 낸 후에 데리고 갈 때는 뒤에서 몰고 가는 돼지나 염소와 달리 목자가 양들보다 앞서간다고 합니다. 양은 두려움이 많고, 방향 감각이 둔한 동물이라서 절대로 스스로 앞서 길을 가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목자가 앞서가야지만 양들이 그 뒤를 따라간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양이 목자를 따라갈 때, 목자의 행동을 그대로 보고 따라 한다는 것입니다. 은 웅덩이나 개울이 있어서 목자가 뛰어넘으면 양도 그 자리에 와서는 그대로 뛰어넘고, 또 목자가 장난삼아 웅덩이가 없는데도 어떤 한 지점에서 마치 웅덩이가 있는 듯 뛰어넘으면 양도 그 자리에 오면 똑같이 뛰어넘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양은 목자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따라 합니다. 그런 양의 특성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당신을 목자에, 우리 신자들은 양에 비유하시며 앞장서 가시는 당신을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 백성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양들을 끝까지 지켜주시며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또 주시어 풍요롭게 하시기 위해,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당신 백성을 얻으시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부르심으로부터 시작해서, 특별한 뜻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 가운데 특정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까지,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부르심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것, 바로 당신과의 일치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떠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고향 집을 떠난 것처럼, 모세가 광야에서의 막막한 목자 생활을 포기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벗어나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몸과 영혼을 맡겼던 것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또한 같은 의미를 갖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이 언뜻 보기에는 위험한 것처럼 보이고,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고, 더러는 맹목적인 행동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한다면, 분명히 같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머물러 있는 그곳”이 오히려 더 위험하고 무의미하며 맹목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직접,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생명으로 이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교황님께서도 담화문을 통하여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 우리는 평화와 정의와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걸음을 내딛으려고 노력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며 이를 실현하려고 최선을 다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기에, 우리는 희망의 순례자입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은 세상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생각할 때, 어리석고 위험천만하며 막연한 길을 걷는 것처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세상 그 어느 삯꾼보다도 더 안전하게, 친근하게, 풍요롭게 해 주시는 목자이심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그분의 부르심을 듣지 않을 수 없고, 그분의 이끄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위해 당신 아들의 목숨까지도 내어 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소 주일은 일반적인 부르심 외에 특별한 부르심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는 주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는 성소 주일을 제정하시면서 “충분한 사제를 확보하는 문제는 모든 신자에게 직접 영향을 줍니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개별 본당과 교구 공동체들의 믿음과 사랑의 활력을 드러내는 명백한 표지이자 그리스도인 가정의 도덕적 건강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기꺼이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곳에서 사제 성소와 봉헌 생활 성소가 많이 생겨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특히 성소 주일은 우리 가운데서, 특별히 우리의 가정에서 주님의 목장에서 봉사할 수 있는 성소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하는 날이며, 동시에 하느님과 백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성직자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며 살아가는 수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성직자, 수도자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가정에서 배출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들은 사제 성소와 수도 성소가 자라나는 못자리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평신도들의 성소가 그 어떤 성소보다도 더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편하고, 안락한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일생을 남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면서 사는 일은 더욱 좋은 일입니다. 탐욕에 찌들어서 돈과 재물을 하느님처럼 섬기고, 자신의 안락과 편안함만을 찾으려고 애쓰는 이 어두운 세대를 밝혀 줄, 꿈과 이상을 지닌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고,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평신도로서의 소명인 결혼 성소를 비로소 완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성직 성소와 수도 성소가 나온다면, 그보다 더 큰 하느님의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성소 주일을 지내며 특별히 지금 성직자의 길과 수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돈과 재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향락과 안일을 추구하는 세태 속에서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자신을 지키면서 살아가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다른 세상에서 온 별종들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똑같은 나약한 인간입니다. 때론 자기 몸 하나도 추스르기 힘겨워하는 나약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의 길에 충실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기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성직자 수도자들이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여러분의 가정에서 많은 성소가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이 미사를 봉헌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성소의 길에 얼마나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떤 꿈을 심어주어 가장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주님의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고 나선 신학생들과 사제들이 주님의 음성만을 듣고 따르는 착한 양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교황님의 말씀대로 “양의 냄새”가 나는 주님을 닮은 착한 목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순례의 여정에 있는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저함 없이 따라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주님께 청하며, 동시에 우리 본당에서 많은 사제와 수도자가 나올 수 있는 은총이 주어지기를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