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카복음 17,11-19
이번 주일 독서는 나병 치유 받은 일화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옛날, 특히 이스라엘에서 나병환자는 가족, 사회, 종교 생활에서 철저히 배척당하고 매장당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데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부여잡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치유 능력에 관한 말을 어쩌다 전해 들었을 때 가졌던 희망은 참으로 컸고 그들의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3)란 부르짖음은 절박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치유해 주십니다.
그들에게 치유 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길을 떠났고 가는 도중에 치유를 받습니다.
열 사람 다 믿음으로 치유를 청했고 말씀을 믿고 분부대로 떠났지만, 예수님께 감사를 드리러 돌아온 이는 단 한 사람이었고 그만이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란 구원의 확실한 말씀을 듣습니다. 차라리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고쳐주셨다면 모두가 감사드렸겠지요.
여기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믿음으로 간절히 하느님께 은혜를 청합니다만 바라던 바가 이루어졌을 때(보통 기도하던 중에 청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라고 아니 요행, 우연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여정에서 얻게 되는 은총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개입을 몰라봅니다.
사실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들은 기적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 않고 기적을 직접 혹은 간접으로 체험하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기적이 아니라 표징이라 부릅니다. 삶 안에서 하느님의 개입을 인식하고 그분의 사랑을 알아차린다면 차츰 삶의 고삐를 그분께 넘겨드리게 되겠지요.
우리의 일상에서 <감사>는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요?
감사를 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면 그 고마움의 대상에 대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고마운 마음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 안에는 진실, 착함, 사랑, 온유, 기쁨, 평화가 자리합니다.
고마워하면서 고마운 대상에게 화를 내거나, 투덜대거나, 미워하거나, 거짓으로 가장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고마움의 대상이 하느님일 때엔 고마움의 대상인 하느님께만 국한되지 않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삶의 기본 태도가 변화됩니다. 세상과 사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뀝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았을까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늘 모자라는 것만 보며 투덜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요? 어느 쪽이 더 선한 마음, 바른 마음을 가졌을까요? 그 답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삶 한가운데 자리하시고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감사드리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것은 믿음의 행위이며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한다고요.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