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카복음 18,9-14
오늘 복음은 두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맺는 두 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리사이의 기도는 겉으로 보아서는 기도의 형식을 갖추고 있고, 하느님께 찬미 감사를 드리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꼿꼿이 서서' 기도하는 그의 모습과 그의 기도 내용을 보면 정말 그에게 하느님에 대한 의식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하느님 현존의식이 없는 그라고 한다면 그의 행동은(불의한 짓을 안하고 단식을 일주일에 두 번이나 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바치는 행위) 자랑할만 하고 자기만족으로 행할 수 밖에 없어서 자화자찬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만 기도일 수는 없습니다.
이에 비해 세리는 하느님 앞에 자기를 내세울 자격이 없음을, 아무런 공로도 쌓을 수 없음을 너무 잘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바리사이에 비해 스스로의 부족을 쉽게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 차라리 도움이 된 것도 같습니다.
루카복음 15장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 이야기에서 처럼 말입니다. 늘 아버지와 같이 있으나 아버지의 자비(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었던 큰아들에 비해 집을 뛰쳐나가 방탕의 길을 걸었던 둘째는 아버지의 더 큰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바리사이의 기도를 보면 그의 자만, 자랑은 모두 다 비교에서 얻은 것들입니다. 다른 이와 비교해서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해야 행복해지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다른 이의 잘못을 고소하게 생각하고 그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며 다른 이의 장점 앞에서 위축되고 질투에 사로잡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면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인정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 하느님 자비에 대한 믿음과 희망에서 비롯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잘 살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물론 그것은 이니지요.
우리의 삶은 하느님을 향해 있어야하고 그럴때 의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우리 중 어느누구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선을 행했든지 악을 저질렀든지 모든 일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삶의 중심에 계시면 나는 의로운 자로 살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를 하느님께로 데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천국을 만날 것입니다.
천국이란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초대합니다. 천국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