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20,19-31
부활 8일 축제 내 복음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거듭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데 거의 언제나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는 부활 후의 그분의 존재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길은 그분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보여주셨던 표징과 말씀에 되돌아가는 것임을 복음은 얘기해줍니다.
그리고 부활 후의 삶은 다르고 변화된 삶이지만 부활하신 분은 여전히 나자렛 예수, 십자가형을 당하신 그분임을 강조합니다.
이것 때문에 오늘의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형의 상처들에 대해 얘기합니다.(20.25,27절)
또한 토마스는 믿기 위해서 그 상처들을 보고 만져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셔서 당신의 상처를 보여주시면서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우리의 삶을 철저히, 고통과 죽음까지 나누려 오셨습니다. 이는 아버지께 대한 신뢰와 인간에 대한(원수까지도)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이 큰 사랑을 결코 죽음의 세력이 가두어둘 수 없음을,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사랑 안에 사는 이는 부활할 것임을 당신 부활로 드러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 후에 그들의 두려움 때문에(19) 갇혀(문을 닫고)있었다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닫힌 문을 통과하셨는지를 묻기보다 우리 삶의 모든 상황에서, 죽음까지도 우리와 동반하시기에 이제 어떠한 상황도 그분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이 중대한 사실을 얘기하고 있음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를 마비시키고 갇혀있게 하는 우리의 두려움 속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평화를 주시기 위해 들어오십니다.(20,21,26절) 그리고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시고 당신의 사명을 계속하라고 우리를 보내십니다.(21)
그분의 사명은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그분의 상처를 바라볼 때 우리는 아버지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지를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도 용서(23)를 통해 그렇게 하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용서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신 그분께서 하신 것처럼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당신의 입김, 하느님 생명 자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함, 상처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세성사로, 또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하는 다른 모든 성사들로 인해 성령을, 예수님의 영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두의 형제로서 살 수 있고 서로 용서하며 우리 가족, 공동체, 사회 안에서 평화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믿는 이는 복되다고(29)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부활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