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예수님의 명성이 온 이스라엘에 알려질 때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둘로 나뉩니다. 갈릴래아와 같은 지역에서는 예수님을 하느님이 보내신 예언자처럼 생각하지만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의심이 먼저였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일을 예루살렘에서 먼저 시작하셨다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인정받고 어떤 자격을 받았다면 예수님이 고향에서도 그런 일을 당하지는 않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순서와 가치를 따르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많은 시간 동안 세워 놓은 질서와 완성된 듯 전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는 예수님은 사람을 고르는 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때론 그들로 인해 예수님이 의심을 받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제자들은 누구나 하는 일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가까운 거의 모든 지역에서도 지키는 관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규칙을 지키지 않은 이들을 제자로 둔 스승인 예수님은 그 부족함을 지적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던진 말에 담겨 있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곧 하느님의 율법을 생명처럼 여기는 이들이 조상들의 관습조차 그렇게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상황을 스스로 볼 수 있도록 이야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은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고 다음 같은 기회가 있다면 그들은 분명 손을 씻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마치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듯 이야기하고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들이 현실에도 이런 생각으로 사람을 무시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어기는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곧 그들이 지닌 지식과 신념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인지 조상들에게 온 것인지 상관 없이 결국 그것을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려드는 그들의 태도가 사람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경솔함과 거만함이 된 것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도 그들에게는 사람을 판단하거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일 수밖에 없는 '위선'을 보신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부모에게 해야 할 도리를 피해가는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하느님의 율법을 천금같이 지킨다고 자랑스러워하는 현실을 드러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에게 몇 배의 충격이 되는 말로 이야기를 끝내십니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인지, 또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 나를 위한 보호막이나 혹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런 짓들"을 하는 중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급할 때만' 하느님을 찾는다고 고백하거나 반성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좀 더 일상적으로 하느님을 이용해서 세상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에 처음 주어진 질서와 영원한 생명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세상의 지혜들도 삶을 살기 위해 생겨난 질서입니다.
그 질서가 깨어지는 것이 스스로에게 또 공동체에 해가 될 수 있지만 그것으로 그 사람을 단죄하거나 걸러 낼 도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의 잘못을 수정해주면 그만이고 우리는 방향을 바꿔 회개의 삶을 살면 하느님도 사람도 함께 사는데 아무런 장애가 될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의 이유를 잘 살펴 모두를 살리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실천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