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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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은총을 베푸셨음을 잘 아는 우리는 지금도 주님의 은총을 받기를 간절히 청하곤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그 은총의 수혜자가 우리이기를 기대하고 기도에 집중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또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그분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와 다른 면들이 보입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드는 것은 같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행렬과 좀 다릅니다. 곧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가 그들에게서 드러나는데 짧은 복음이지만 유심히 바라볼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올 때 홀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 바로 오지 않고 자신의 주변을 살핍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아픈 이의 들것이 들려 있었습니다. 물론 그 위에는 걷지 못할 정도로 아픈 이들이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병자들이 있는 것이 이상할리 없지만 사실 그들이 모두 어떻게 모였는지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능력자로 보는 것과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행동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에겐 예수님의 능력이 그분의 권능으로 하느님의 아들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 때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은 물론 그분이 사람들의 아픔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같이 아픈 이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그 다음의 결론을 좋아합니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이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하느님의 은총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정말 하느님의 은총을 아는 사람들은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는 모습 속에서 드러납니다. 주님은 사람의 아픔을 대하는 것에 아낌이 없는 분이셨고 또한 사람들에게 그런 마음을 이야기하시고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변화가 주님의 복음에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사람들은 병자들의 아픔을 저마다의 죄에 대한 벌로 여기거나 어쩔 수 없이 도울 수 없는 존재들로 여겼습니다. 그 병이 클 수록 그들은 가까이 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벌이니 그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운명의 길을 걷는듯 여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과 행동이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혼자'가 아닌 '함께'가 되었고 홀로 살기 위해 다른 이를 분리시키는 죄의 사람에서 서로를 생각하며 서로의 삶이 되어주는 첫 사람의 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모여온 함께 한 사람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들이 함께 일 때 주님의 은총이 내렸습니다. 아픈 이가 나았다는 것은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함께 걸어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고 우리의 최종 모습입니다. 그 마음에 내린 주님의 은총에 감동과 행복을 느낍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우리도 당장 달라질 수 있을텐데 지금 우리 손에는 누군가의 들것이 잡혀 있지 않습니다. 빈손으로 다른 것을 잡으려 하느님께 손을 모으는 우리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달라지지 않았고, 복음 속 예수님은 언제나 같은데 시간이 지나 이만큼 발전하고 잘 사는 우리는 그 때만 못한 듯 합니다. 달라짐. 그것이 회개라면 우리는 회개할것이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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