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주일 말씀 당겨 읽기

연중 제5주일 <만선>

(이사 6,1-2.3-8; 1코린 15,1-11; 루카 5,1-11)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만선을 꿈꾸고 지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주님의 제자가 되기 이전의 베드로에게

성공은 물고기를 많이 잡고 만선의 깃발을 올리는 일이었을 테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실패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밤새 애를 썼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던 그날,

베드로는 한마디로 실패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오늘 복음이 전하는 구절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하루 밤을 허탕쳤지만 내일을 준비하는 어부의 마음,

지금 거둬들인 수확은 하나도 없지만 내일을 위해서 내일을 준비하며

그물을 손질하는 마음이야말로 희망이며 기도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실패했지만 내일을 꿈꾸고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원하는 이에게

선뜻 베풀 줄 아는 너그러움을 가졌던 베드로였기에

훗날 주님의 수제자가 되어

교회의 반석이 되는 직무를 얻었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날 베드로가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었던 자신의 능력을 비하하거나

밤새 노동한 대가가 이게 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그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배에 올라서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했을 때

선선히 그 말을 들어 줄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콕 집어서 그날 그 곳에 배 두 척이 있었던 사실을 전하고

예수님께서 굳이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른 사실을 전하는 이유가 아닐까 짚어 봅니다.

만약에 베드로가 자기 생각에만 갇혀서

지금 눈앞의 것에만 연연했던 사람이었다면 주님의 부탁을 듣고서

선선히 들어주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대뜸 지금 누구 약 올리는 거냐?’

지금 이 꼴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느냐?’

내가 지금 당신 부탁을 들어줄 입장이냐?’

버럭 화를 내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뜻입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지금 내 일이 힘들고 어려워서 어쩔 줄 모를 때,

내 코가 석자일 때,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부탁 같은 걸

들어 줄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렵습니다.

물론 상대의 마음 상태가 좋지 않을 것을 미리 참작해서

말도 조심스레 건네는 일이 눈치 있고 또 염치를 차린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예수님은 참 눈치도 없으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눈치코치도 없이 베드로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시다니 정말 그렇습니다.

 

아무튼 그날 베드로에게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박이 터졌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대번에 이뤘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기뻐하고 우쭐대기는커녕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님의 무릎 앞에 엎드렸습니다.

세상은 실패를 딛고 일어난 성공 이야기는

그 때부터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으로 맺습니다.

세상은 실패를 만나면 인생이 좌절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는 일이고

그 사실을 주님께 고백하는 일이며

그 후에 세상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을 행하는 사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 날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지 못한 것이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까지 스스로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고

때문에 주님 앞에 고백하지 못했던 일이 실패였습니다.

 

베드로는 그날 물고기를 많이 잡아서 대박이 나고 성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고, 주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삶에서 성공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한 일은

물고기가 두 배에 가득 채워지는 놀라운 만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죄인임을 고백해 올리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신진리를 고백하는 일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현실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만선을 꿈꾸고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허락하기도 하시고 좌절하게도 하십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믿기에 실망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한층 업그레이드 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에 감격하여

주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오직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하게 됩니다.

 

물고기를 잡는 일에만 목숨을 거는 세상,

만선이 되어야만 성공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잃고 절망 속을 헤매는 세상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배를 타고 인생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영적인 기도에만 함께 하시고

교회 일에만 관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처럼 우리의 일상에, 우리가 하는 일에

우리의 수확에도 철저히 간섭하십니다.

 

같은 일, 같은 수고이지만 월등한 결과를 원하십니까?

그럼 예수님을 초대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기 바랍니다.

자신의 실력과 힘을 믿지 말고 주님의 뜻이기에 믿어지지 않아도

스승님의 말씀대로그물을 내리기 바랍니다.

 

하여 우리 모두의 복된 삶으로 하느님의 축복을 증거하고

온 세상이 놀라 그분을 향하도록 이끄는 도구로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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