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3009호 2016.08.28 18면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낮출수록 높아진다

연중 제22주일 (루카 14,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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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그리스 시대 학교에서는 설득의 기술인 수사학을 가르치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을 높일 수 있는지를 가르쳤습니다. 설득력을 지니려면 자기 말에 합당한 자격을 지녀야 하는데, 수사학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자격을 적절히 자랑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바오로도 이러한 기교를 사용하곤 합니다(필립 3,4-6). 그런데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수사학과는 정반대로 자신을 높이거나 자랑하지 말고 낮추라고 권고합니다.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어리석은 가르침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제자로 복음을 선포하려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지켜내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1,18). 말과 행동이 달라서는 결코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면, 복음의 설득력은 자신을 높이는 데서 오지 않고, 낮추는 데서 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필리 3,7-11; 1코린 12,1-5).

그런데 여전히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독서와 복음이 자신을 낮추고 죽이라고 가르치는 것도 결국 자신을 높이고 살려내기 위함입니다(집회 3,18; 루카 14,10-11.14). 이렇게 보면 복음은 단순히 고통을 즐기라는, 슬픔을 즐기라는 마조히스트적 가르침이 아니라, 진정 자신을 높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다만 알려주는 길이 일반적인 길과 다를 뿐입니다.

많은 이들은 세상의 관점에서 높은 자리, 높은 지위, 많은 재물을 얻는 데 행복이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은 하느님 앞에서 높은 자가 되는 것, 하느님 앞에서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 영원한 삶이 더욱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를 얻고자 한다면 하느님과 이웃들 앞에서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자신을 높이는 이들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받아들이는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은 자기 뜻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하느님과 거리가 멉니다. 그런 이들은 아무리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른다 하더라도 결코 하느님 앞에서 높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가련하고, 가난한 이들이 얼마나 행복한 이들인지를 노래합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느님의 손길을 갈망하고, 그분께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성경이 자신을 낮추라는 것은 일부러 남 밑에 들어가 살라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께서도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같이” 되셨습니다(1필리 2,6-8). 그러니 그분을 따르는 우리도 예수님의 길을 따라 자신을 낮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그러하였듯이 우리도 들어 높여 주실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
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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