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국제신문 
게재 일자 2019.03.28 / 17면 


 

동북아 바다… 인문학으로 항해하다 : 복음을 위해 바다를 건넌 선교사들


교황 파견 사명받은 ‘예수회’ 가장 먼저 日 가고시마 도착
중국 포교를 목표로 선교 시작

1605년 베이징에 천주당 건립
‘천주교’라 이름 짓고 세력 확산
조선, 교리서·서신 왕래만으로 신부·선교사 없이 천주교회 설립

예수회 사제들, 복음 활동 함께 동양 고전 해석해 유럽에 알려
문명 교류 산파 역할도 담당



머나먼 뱃길을 따라 동북아해역에 도달한 서양인들은 상인만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동아시아인들에게 전파한다는 일념으로 고난의 항해를 마다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선교사들이다. 동북아해역에 아직 남아 있는 서양인의 흔적, 상관(商館)이나 묘지 외에 가장 많은 것이 종교 관련 유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 유적들은 마냥 과거의 흔적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살아 있다. 왜냐하면 서양 선교사들의 동양 전도에 대한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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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 가고시마에 있는 하비에르 내항기념비. 예수회 소속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는 1549년 이곳에 도착했다.
오른쪽은 부산 금정구 오륜대 순교자 성지에 세워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
위키피디아·국제신문 DB



■ 복음을 전하러 동북아 바다로

가장 먼저 동북아해역에 도착해 동아시아 선교의 시작을 알린 이들은 천주교의 예수회 선교사였다. 프란치스코회나 도미니코회, 베네딕토회 등 많은 천주교 선교단체가 동아시아 선교를 목표로 했지만, 예수회가 그 선교의 선봉이 된 것은 예수회 탄생 배경과도 관련이 깊다.

1540년 수도회로서 로마교황청 인가를 받은 예수회는 전통적인 수도회가 내세우는 삼대 서원(誓願)인 청빈, 정결, 순명 외에 구원과 믿음의 전파를 위해 맡겨지는 교황의 파견 사명 즉 선교를 지체없이 수행하겠다는 네 번째 서원을 받는다.

이렇게 예수회에 의해 선교가 천주교의 목표가 된 것은 종교개혁의 물결에서 가톨릭교회를 지키려는 움직임과도 맥이 닿아 있다. 또 예수회를 이끈 수사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전직 군인이었는데, 이러한 점이 선교라는 목표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저돌성을 갖게 하였다. 게다가 예수회 활동은 바로 종교개혁의 불길에서 자체적으로 천주교의 신앙적 혁신을 기도한 포르투갈, 스페인, 북이탈리아 등지의 종교 단체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사정도 있었다. 대항해시대를 맞아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활발히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했던 것과 예수회의 동아시아 선교는 궤를 같이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회의 세계 판도는 이 두 나라의 무역과 연관된 지역을 포괄한다.

처음 아시아에서 예수회 선교의 거점이 된 곳은 인도였다. 포르투갈이 1513년 고야를 점령했기 때문인데, 이곳을 토대로 동북아해역에서 예수회 선교사가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이 바로 일본이었다. 1549년 예수회 소속 성(聖)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규슈 남부 가고시마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동아시아 선교는 궁극적으로 중국 선교를 목표로 했다. 하비에르 신부가 일본을 떠나 1552년 광둥성 앞 상천도(上川島)에 상륙해 중국 선교를 시도한 것은 이런 인식에서였다. 이후 광둥성에 정착해 중국 선교를 모색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던 예수회는 1601년 마테오 리치 신부가 만력(万曆) 황제로부터 베이징 선무문(宣武門) 안에 천주당(天主堂)을 세워도 된다는 허가를 받으면서 길이 열렸다.


■ 동아시아 선교네트워크 속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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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교에 힘쓴 예수회 소속 신부 마테오 리치의 초상.



현재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기독교세가 강한 한국에서 사실 서양 선교사의 입국도 없이 천주교회가 설립된 것은 재미있는 대목이다. 개신교가 해방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느님과의 소통을 반드시 신부를 통해야 한다는 천주교의 교리인데, 그런 점에서 신부나 선교사도 없이 교리서만을 읽고 또 베이징 주재 예수회 선교사들과 서신 왕래만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가 설립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여하튼 1782년 바로 이 천주교회의 설립을 지금까지 한국 천주교의 기점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1592년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는 임진왜란의 발발로 스페인 신부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개인적 초청에 따라 조선에 입국한 사실을 근거로 든 것이다. 예수회 신부들은 적어도 1580년까지 일본의 한반도와 중국 침략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비에르 신부가 떠난 뒤 급격히 천주교가 성장한 일본에서의 포교를 지원하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가 루이스 프로이스, 알렉산드로 발리냐노, 솔도 오르간티노 신부에게 중국과 조선을 정복할 자신의 계획을 소개했는데, 프로이스 등은 전쟁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노부나가의 계획을 통해 오랫동안 기대해온 중국과 조선 포교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부 예수회사들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나라와 조선 침략 계획을 이용해 복음을 전파할 생각을 한 것은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화가 복음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파악했고, 그 전례를 동아시아에서 다시 전개하려 했던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조선을 통해 중국에 이른다는 예수회의 선교 전략은 100년 뒤에는 반대로 조선을 통해 일본 선교를 달성한다는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17세기 중반부터 중국 예수회 선교사들은 이전 일본 천주교 선교에 대한 미련을 갖고 꾸준히 일본 상륙을 시도하였다. 어떤 이들은 일본 신도들이 막부의 압박을 피해 만주로 이주했을 것이라 추측했고, 교황청의 일본 복음화 금지령에도 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은 일본과 중국 교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중국 해변에 위치한 상하이, 닝보, 타이완을 일본 도달의 중요한 곳으로 인식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결국 모두 실패로 끝났고, 그들이 찾은 루트는 바로 중국 동북부와 조선을 통해 일본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미 학계에 잘 알려진 1619~1621년 니콜로 롱고바르도 신부, 프란치스코 삼비아시 신부와 서광계(徐光啓)의 조선 선교 시도, 그리고 1644년 요한 아담 샬 폰 벨 신부가 소현세자와 교유한 것은 단지 조선에서의 선교 목표가 아니라 일본으로 진출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세계 또는 동아시아 선교 네트워크 관점에서 조선은 하나의 가교였던 셈이다. 예수회 소속 선교사가 임진왜란 시기 잠시 조선에 들어온 것을 제외하고, 실제로 예수회의 국내 활동은 수백 년 뒤인 1954년 시작됐는데, 그 대표적인 성과가 바로 1960년 서강대학교 설립이다.


■ 동서 문명 매개자: 예수회 선교사

예수회는 1605년 베이징에 천주당을 세우고, 천주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주교가 서서히 저장성과 푸젠성 등으로 확산됐고 개종자 수도 점차 증가하였다. 이와 함께 조선 땅에 들어온 적이 없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에 의해 조선에 복음이 전해졌고, 신부가 탄생했으며 신자가 생겼다. 한역서학서에는 교리서 외에도 다양한 서구 근대 학문이 포함돼 있었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이처럼 출판을 통한 복음 방식을 택한 것은 예수회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는데, 예수회의 신앙적 지도자들이 대체로 귀족 가문의 인문주의적 교육을 받은 상당한 지적 엘리트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은 당대 유럽 귀족과 군주들의 자제를 대상으로 한 엘리트 교육에 집중하여 개신교가 장악한 독일이나 동유럽에서 가톨릭의 반격을 가할 교두보 확보에 중심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엘리트 교육 중심 방식은 동아시아에서 유학자와 다이묘 등을 집중적으로 선교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예수회 활동에서 우리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서구 문물 전파와 함께 이들이 해석한 동양 고전이 유럽에 소개돼 유럽의 중국학 붐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동북아해역으로 온 선교사들은 이처럼 동서문명 교류의 산파역을 담당했음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서광덕   부경대 HK 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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