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뉴스
매체명 가톨릭신문 
게재 일자 2981호 2016.02.07. 4면 

[사회교리 아카데미] 대한민국 청년에게 없는 것

가능성 없기에 나라를 떠나고 싶다
빈곤탈출률 낮아지고 재산은 세습
최저임금조차 지키지 않는 곳 많아
지친 청년 위한 교회 역할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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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조영남)

막 사제품을 받고 보좌신부로 사목했던 첫 본당에서 한 청년이 찾아왔다. 그때는 고등부 학생이었는데 벌써 30대 중반의 청년이 됐다.

그저 그런 지방 사립대를 나와 중소기업 몇 곳에서 일하다, 이제는 이민을 준비한다고 한다. 못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이민까지 가야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마치도 준비했다는 듯이 너무나 명쾌한 이유를 내놓았다.

첫째, 자신이 돌아다녀보거나 이리저리 알아본 호주나 북유럽 등의 나라에서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먹고 살만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1시간 일해서 얻는 최저임금 6030원으로는 점심식사 한 끼는 커녕 커피 한 잔 마시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최저임금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사업장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나라들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오히려 험한 일을 할수록 얻는 소득이 높다는 것이다. 1시간 일하면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앞에서 언급한 외국에선 레스토랑이나 가게 같은 곳에선 말할 것도 없고, 농장이나 공장 같은 곳에서도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시간, 쉬는 시간 등이 확실해서 험한 일이라 하더라도 혹사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8시간 노동에 쉬는 시간이 확실한 사업장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윗사람의 눈치를 엄청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민을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청년들이 가지지 못하는 게 바로 가능성이란다. 지금 고생하더라도 미래 가능성이 있다면 견디고 이겨내겠지만, 가능성은 커녕 지금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만 태산이라는 것이다.

이 청년의 이야기를 단지 한 개인의 주관적 느낌이나 생각으로 치부할 수 없다. 사실관계가 확실한 지 볼 필요도 있고, 또 주관적 시선이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오늘날 우리의 노동현실과 청년들이 처한 현실이 어떠한 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노동자들의 평균 소득은 낮고, 노동시간은 훨씬 더 길고, 노동 강도도 훨씬 더 높다. 노후연금이나 의료, 교육 등의 사회적 보장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은 비정규직이며, 비정규직의 소득은 정규직의 60% 정도이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 번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통계가 보여주는 바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가난에서 벗어나는 경우(즉 빈곤탈출률)는 최근 10년 동안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또한 노동으로 버는 소득(근로소득)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반면, 은행 이자나 주식 배당금과 같은 자본소득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부와 가난은 각각 자녀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부모가 가난하면 나도 가난하고,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나도 비정규직인 것이다.

그 청년의 마지막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신부님, 우리나라 청년들이 가지지 못한 게 뭔지 아세요? 첫째는 가능성이고, 둘째도 가능성이고, 셋째도 가능성이에요. 빨리 짐 싸서 이 나라를 떠나는 게 정답입니다.”

그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그에게 뭐라 답해야 할까? 이런 상황 앞에서 교회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사회교리는 바로 이 도전에 대한 응답에서 출발한다.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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